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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8

병원은 꼭 병원처럼 생겨야 할까

이 건물이 병원이라구요?


얼마 전, 후쿠오카의 와타나베도리 거리를 걷다가 높은 빌딩 사이에서 문득 눈길을 끄는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주변 건물들 보다 유독 잘 정리된 화단의 식물과 꽃들, 깨끗한 유리 외관과 차분한 조명, 정돈된 로비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새로 지은 호텔이나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특유의 세련된 도시형 레지던스 같기도 했고, 어느 디자인 호텔의 라운지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의외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쿠라쥬지 메디컬 스퀘어(桜十字 メディカルスクエア)’



이미지 출처 : sj-fukuoka.or.jp/medicalcheckup


병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섰을 때도 여전히 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병원을 떠올리면 차가운 조명과 소독약 냄새, 긴장된 분위기와 바쁜 움직임이 먼저 생각나는데 이곳은 전혀 달랐습니다.


높은 층고와 커다란 창, 따스하게 쏟아지는 빛과 우드톤의 멋진 인테리어, 여유로운 로비와 카페 같은 공간 구성은 오히려 들어온 사람을 안심시키고 머물게 만드는 분위기에 가까웠습니다. 건물 안 로비의 분위기는 밝고 경쾌한 듯 느껴지고 사람들의 표정도 어둡지 않았습니다. 젊은 직원들의 건강한 에너지 덕분인 것 같았습니다. 좀 더 병원을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은 꼭 병원처럼 생겨야 할까?'


층별 안내와 리플렛을 살펴보니 이곳은 일본 초고령사회 속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는 ‘사쿠라쥬지 그룹(Sakurajyuji Group)’이 운영하는 병원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웰빙 플랫폼으로


사쿠라쥬지 그룹은 2005년 일본 구마모토현의 한 민간병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구마모토현 최대 규모 병상 수를 가진 ‘사쿠라쥬지 병원’으로부터 출발한 이 그룹은 이제 단순 병원 운영에 머무르지 않고 웰다잉, 웰에이징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초고령사회를 타겟으로 한 기업이었습니다.



사쿠라쥬지의 노인주거공간  이미지 출처 : sakurajuji.com


현재는 의료, 재활, 개호(介護), 예방의학, 시니어 주거, 피트니스, 카페와 다이닝, 호텔과 리조트, 커뮤니티 공간, 도시재생 , 웰빙 콘텐츠까지 함께 다루며 초고령사회 속 일본형 헬스케어·웰빙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직원 수는 약 1만 명 규모에 이르며, 동경과 오사카를 비롯 일본 전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큰 규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랜시간 굳어져버린 의료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쿠라쥬지 그룹은 최근 새로운 슬로건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표했습니다.

“WELL-BEING FRONTIER”


직역하면 ‘웰빙의 새로운 지평’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강조하는 “우리의 필드는 몸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가 된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인 이유는 더 이상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안정, 사회적 관계, 삶의 충만함까지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sakurajuji.com


그래서 사큐라쥬지 그룹은 의료기업임에도 음식, 엔터테인먼트, 인테리어, 예술, 주거까지 모두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 아니 인류 모두가 맞닥뜨린 초고령사회가 도달할 수밖에 없는 방향이라 생각됩니다.


‘환자’ 이전에 삶을 살아가는 존재


사쿠라쥬지 그룹은 인간의 삶을 단순한 의료 서비스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중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Life Story’로 연결된 존재로 인간을 이해하며 그 단계마다 적절한 의료적 접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들이 말하는 의료는 단순 치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병이나 부상을 치료하는 신체적 케어뿐 아니라 한 인간의 정신적 안정과 사회적 연결, 삶의 만족, 인생을 살아가며 누리는 기쁨까지 함께 다루는 것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영역의 서비스라는 것입니다.




‘Life Potential Curve’  이미지 출처 : sakurajuji.com


이들이 제시한 ‘Life Potential Curve’ 라는 개념 역시 수긍이 갔습니다. 인간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돌봄과 공간, 운동과 관계, 문화와 경험을 통해 삶의 가능성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오래 살기를 원하지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기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가능한 오래 스스로 걷고, 좋아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젊고 세련된 감각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불안하지 않고, 안전하며, 존엄을 지키는 노년을 꿈꿉니다.


그렇다면 병원 역시 검진을 하거나 아픈 곳을 치료하는 공간에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삶의 질을 유지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먼저 고민하기 시작한 것들


생각해보면 우리보다 일찍 고령사회가 시작된 일본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고민을 시작해왔습니다. 초고령사회 속에서 단순 치료 중심 의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도쿄에서 방문했던 국립재활병원과 여러 지역복지 시설들도 비슷한 흐름 안에 있었습니다. 노인들이 시설로 이동하기보다 가능한 오래 자신의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화장실과 부엌을 개조해주는 서비스, 신체 기능 저하 정도에 따라 세밀하게 설계된 가구와 복지 용구들, 장애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 일하며 살아가는 공동체형 기업들. 또 어떤 시설은 노인 데이케어와 유치원을 함께 운영하며 아이들과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도들의 중심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인간답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


세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세대 통합’의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시설은 ‘노인들만의 공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요양보호사와 간병인 역시 여성 노인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른바 ‘노노케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여러 시설에서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젊은 직원들과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고 있었고, 병원과 복지시설 안에서도 그들의 그러한 활기와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특히 시설 안에서 뛰노는 유치원 아이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어린 아이들뿐 아니라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이 함께 존재하는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사쿠라쥬지의 다양한 사업 영역 이미지 출처 : sakurajuji.com


우리가 마을 속에서 이웃들과 어우러지며, 또 대가족을 이루며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살았던 것은 불과 얼마 전입니다. 노년을 ‘노인들끼리만 모여 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 안에 다양한 세대가 계속 연결되어 있도록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초고령사회가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일 지 모릅니다.


사쿠라쥬지 그룹 역시 이러한 흐름을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공식 유튜브와 홍보 콘텐츠들을 살펴보니 보면 단순 치료 장면보다,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고 운동하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자주 등장하고 병원을 소개하는 영상인데도 웃음과 일상, 식사와 관계의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지며 “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치료의 일부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노년의 식욕과 삶의 기쁨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고령자의 식문화에 대한 콘텐츠였습니다. 일본은 초고령사회 속에서 ‘먹는 즐거움’을 매우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단순 영양 관리가 아니라 식사 자체를 삶의 기쁨과 연결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년층에게 식욕은 단순 생존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와 먹는가, 어떤 공간에서 먹는가, 무엇을 먹고 싶은가. 이런 것들이 삶의 만족도와 연결됩니다.



사쿠라쥬지 홈페이지 내용 중 일부  출처 : sakurajuji.com


사쿠라쥬지는 식사를 단순 급식이 아니라 삶의 질과 존엄의 일부로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병원 안에서도 카페와 다이닝, 커뮤니티 공간이 중요하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앞으로의 노년은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훨씬 중요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흥미로운 것은 사쿠라쥬지 그룹이 최근 단순 의료와 웰빙을 넘어 ‘삶의 마지막-죽음’까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최근 발표한 ‘재택의료 프론티어 프로젝트 2040’에서는 2040년 일본의 연간 사망자 수가 약 16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며 단순히 병상이 부족한 문제를 넘어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중요한 사회적 질문으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문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진료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그들은 재택의료를 단순 치료의 연장이 아니라, 한 사람다운 삶의 마지막을 지지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명감에 의존하는 의료”에서 “사명감을 지켜낼 수 있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단순히 의료 시스템만이 아니라, 초고령사회 속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역할까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표현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부드러운 임종을.”

죽음을 차갑고 고립된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삶의 흐름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 sakurajuji.com


함께 고민할 문제들


이러한 흐름은 더 이상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 역시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공동체, 병원과 복지의 모습 또한 앞으로 빠르게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는가를 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동안의 의료와 복지는 주로 질병을 치료하고 돌보는 기능에 집중해왔습니다. 물론 그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초고령사회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 다운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가능한 오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자신이 익숙한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의 보호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주체로 존중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병원은 단순히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는 공간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안정 시키고 삶의 질을 지켜주는 공간으로 변화할 것이며, 차갑고 기능적인 공간보다 따뜻한 조명과 자연스러운 대화, 좋은 식사와 편안한 쉼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치료와 돌봄 뿐 아니라 인간 다운 생활 자체를 지지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치료만이 아닌 인간 다운 생활 자체를 지지하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듭니다. 그러나 아무도 스스로를 ‘노인답게’ 살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여전히 자기다운 취향과 감각을 유지한 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젊음을 흉내 내고 싶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한 사람의 인격과 취향, 관계와 삶의 리듬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어쩌면 초고령사회란 단순히 노인이 많아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질문하게 되는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이정선 이라이프 연구원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사와 작품연구를 강의하였고 이후 숭실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초고령사회에서 보다 의미있는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기 위한 문화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과 좋은죽음을 위한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다. 최근 연구인 [노인의 죽음준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노년기 삶의 질과 준비된 이별에 대한 학술적 탐색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에덴낙원의 기획실장과 이라이프아카데미의 책임연구원으로서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통합적 복지와 문화적 실천을 기획·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