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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

이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㉓

 ㉓ 자크 루드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톨레도 미술관


지난 6월 20일, 아내와 함께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6층)에서 열린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전시를 다녀왔다. 아내에게 이런저런 작품 설명을 하다가 한 벽면 앞에서 멈춰 서서 꽤 오래 설명을 하였다. 그곳에는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거장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가 남겼다는 명언이 아주 경건하게 적혀 있었다.


"예술은 도덕성을 일깨워야 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전시장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비드는 사실 평생 철저하게 권력의 향방에 따라 붓을 움직였던 정치적 카멜레온의 대가였는데… 예술적 성취와 인간적 행보 사이의 이 지독한 헛소리를 아내와 공유하며 킥킥대다 보니, 자연스레 대서양 너머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 숨겨진 그의 걸작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어졌다. 그렇게 이번 달 원고는 톨레도 미술관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로 정해졌다.



다비드의 자화상(1794)    출처 : wikipedia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 


신고전주의의 정석이자 프랑스 혁명의 전조를 알린 명작으로 널리 알려진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보통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필자도 이 그림을 학생들에게 설명할 때 루브르에 있는 작품만 다루었다.


당시에 미국의 중소도시 톨레도에 위치한 톨레도 미술관에도 다비드가 직접 그린 또 하나의 진품이 걸려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루브르 버전을 완성한 직후 1786년에 다비드가 스스로 다시 그린 반복작(Repetition)이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호라티우스 삼 형제가 적국인 ‘알바 롱가’와의 전쟁을 앞두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아버지 앞에서 맹세하는 비장한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4)    출처 : wikipedia


두 작품의 결정적인 차이는 단지 '사이즈'다. 루브르의 원본은 세로 3.3미터, 가로 4.2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벽면 크기인데, 톨레도 미술관의 작품은 세로 약 1.3미터, 가로 1.6미터 정도로 원작에 비해 훨씬 작다. 당시 프랑스의 귀족 보드레이 백작(Comte de Vaudreuil)이 자신의 저택 거실에 걸어두고 싶다며 다비드에게 특별히 "가정용 사이즈"로 주문했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을 감는 물레가 묘사되어 있는 것 정도가 미세한 차이인 것 같다.



톨레도 미술관 전경    출처 : dandad.org


이 작품이 미국의 톨레도까지 흘러 들어간 경로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역사 드라마 전개와 같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주문자였던 보드레이 백작은 전 재산을 둔 채 급히 해외로 망명했고, 이 그림은 혁명 정부에 의해 압수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수많은 유럽 수집가들의 손을 전전하였다. 20세기 중반 자금력을 앞세운 미국 자본이 알게 되었다.


톨레도 미술관은 1950년 파리의 유명 화상인 와일덴스타인(Wildenstein)을 통해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정식으로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 격동기를 거치며 귀족의 거실에서 혁명 정부의 창고로, 다시 미국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여정 자체가 이 그림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더현대 서울의 전시장 벽면에서 나를 웃게 만들었던 다비드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의 '도덕성' 고찰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는 처음에는 루이 16세 왕실의 돈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고, 혁명이 터지자 자코뱅파의 수장 로베스피에르의 절친이 되어 국왕의 사형 집행서에 서명했다. 그러다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자 재빨리 나폴레옹에게 줄을 서서 황제의 수석 화가로 출세 가도를 달렸다.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1807) 출처 : wikipedia


권력자의 발치에서 그들의 정당성을 미화하는 그림을 평생 그려온 인물이 후대를 향해 도덕성을 운운하는 그 당당함이란… 인간적으로는 참 얄밉지만, 시대를 읽는 안목과 철저한 고증, 엄격한 비례로 화면을 통제한 그의 붓끝의 힘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감상적인 로코코 풍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연극적인 조명 효과로 관람객의 애국심을 고취시킨 이 작품은, 그의 기회주의적인 삶 덕분에 프랑스 미술사의 정통 주류로 완벽하게 안착할 수 있었다.


톨레도 미술관(Toledo Museum of Art)


이 대작을 소장하고 있는 오하이오주의 톨레도는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다.


원래 이 지역은 1830년대에 '포트 로렌스'와 '비스타'라는 두 개의 작은 마을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도시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주민들은 투표 끝에 미국식 이름 대신, 스페인의 역사적인 고도이자 문화적 자부심이 가득한 도시 '톨레도'의 이름을 그대로 따오기로 결정했다. 비록 미국의 신생 도시에 불과하지만, 스페인의 톨레도처럼 깊이 있는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야심 찬 네이밍이었다. 사실 이런 식의 네이밍은 미국과 캐나다에는 여기저기 잔뜩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방식이다.



톨레도 미술관 내부    출처 : hyperallergic.com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 열망은 1901년, 유리 제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자산가 에드워드 드러먼드 리비(Edward Drummond Libbey, 1854-1925)에 의해 현실이 되었다. 그가 설립한 톨레도 미술관은 오늘날 뉴욕 메트로폴리탄, 보스턴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워싱턴 국립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의 5대 미술관' 중 하나로 당당히 손꼽힌다.



에드워드 드러먼드 리비(Edward Drummond Libbey, 1854-1925)    출처 : calisphere.org


인구 수십만 명에 불과한 중소도시의 미술관이 이런 명성을 얻은 근거는 명확하다.


첫째,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컬렉션의 질이다. 다비드의 작품뿐만 아니라 렘브란트, 루벤스, 고흐, 피카소 등 미술사의 올스타들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둘째, 도시의 주력 산업이었던 유리 공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세계 최고 수준의 '유리 예술(Glass Art)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게 정말 대단한데 개관 이래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관람객에게 '입장료'를 받지 않은 지독한 공유 정신이다. 대도시의 거대 미술관들이 비싼 입장료를 받을 때, 이들은 누구나 예술을 누려야 한다는 철학 아래 미국 중서부의 문화적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미국에 방문할 때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오하이오주 톨레도 미술관을 직접 방문하고 싶다.



출처 : tarta.com



톨레도 미술관(Toledo Museum of Art) 공식 홈페이지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