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㉑ 앙리 루소, 전쟁(불화의 기병대)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Musée d'Orsay)
파리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루브르 박물관'이 인류 문명의 거대한 창고라면, '오르세 미술관'은 가장 아름다운 한낮의 꿈과 같다.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국에서 방문하는 많은 친지, 동료들이 한결같이 루브르를 방문하고 싶다고 말하며 필자에게 가이드를 부탁할 때마다 ‘혹시 고흐나 르누아르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오르세 미술관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방향을 틀곤 했다.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오르세에 몰려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따뜻하고 웅장한 천장 아래 수많은 명작들 중 가장 기묘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세관원(Le douanier)이라 불렸던 독학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의 '전쟁'을 오늘 소개하려 한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출처 : wikipedia
세관원 루소
'앙리 루소'는 프랑스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정식 미술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파리의 하급 세관원이었다. 49세라는 늦은 나이에 공무원을 은퇴한 뒤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던 그의 작품을 보고 평론가들은 어린아이의 낙서 같다고 비웃음을 퍼부었다. 원근법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인체의 비율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앙리 쥘리앵 펠릭스 루소
(Henri Julien Félix Rousseau, 1844~1910) 출처 : wikipedia
하지만 '앙리 루소'는 비웃음 속에서도 나보다 훌륭한 화가는 없다고 굳게 믿었던 집요하고 이상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매일 세관의 검문소라는 지루한 일상에 몸담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거대한 밀림과 사자, 그리고 전설 속 기사들을 꿈꿨다고 한다.
그의 이런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가장 먼저 매료된 이들은 놀랍게도 피카소와 같은 젊은 천재 화가들이었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앙리 루소'의 작품에서 기존의 틀에 박힌 아카데미즘이 줄 수 없는 날 것의 힘을 보았고, 그를 위해 성대한 파티를 열어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때 에피소드들도 상당히 많은데 앙리 루소는 피카소에게 귓속말로 ‘지금 파리에서 나와 경쟁할 상대는 피카소 당신 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순간 싸한 얼음공장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1905) 출처 : wikipedia
'앙리 루소'의 그림 중 가장 중요한 주제는 울창한 밀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평생 프랑스 밖을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이국적인 열대 지방으로 떠날 여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장 먼 곳까지 수시로 여행했다. 바로 파리 시내에 있는 '파리 식물원'과 자연사 박물관을 수시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는 식물원의 온실 속에 빽빽하게 우거진 이국적인 식물들을 관찰하며 그것들을 화폭 위에서 거대한 정글로 그려 넣었다.
그는 생전에 ‘식물원의 온실에 들어가 이국적인 식물들을 볼 때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앙리 루소'의 가난한 자의 여행 방법이었다. 비록 몸은 파리에 묶여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식물원의 잎사귀 하나를 단서 삼아 아마존의 깊은 숲 같은 울창한 상상 세계 속 정글을 멋지게 창조해낸 것이다.

적도의 정글(1909) 출처 : wikipedia
'전쟁(불화의 기병대)' — 잔혹한 동화의 미학
'오르세 미술관' 한 벽면을 압도하는 '전쟁(불화의 기병대)'은 '앙리 루소'의 상상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탄생한 걸작이다. 그림 중앙에는 검은 말을 탄 한 여인이 횃불과 칼을 들고 질주한다. 그녀는 그리스 신화 속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를 상징한다. 이 그림에서 말이 보여주는 형상은 우리가 평소 머릿속 혹은 사진에서 보는 그런 보통 말이 아니다. 마치 옆으로 길게 늘어진 괴물처럼 보이는데, 이는 실제 말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앙리 루소'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던 죽음을 상징한다. 말의 수평적인 질주는 파괴의 속도감을 극대화한다. 말의 발 아래에는 수많은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주위를 까마귀들이 맴돈다.

전쟁(1894) 출처 : wikipedia
잔인하긴 하지만, 루소 특유의 평면적이고 만화 같은 화풍 때문에 이 공포는 현실을 넘어선 어떤 초현실적인 환상처럼 느껴진다. 화면 하단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창백한 석고상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 참혹한 풍경 속에서 까마귀들이 시신을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은 분명 잔인한 장면이지만 루소 특유의 평면적이고 투박한 필치 덕분에 이 그림은 현실의 공포라기보다 한 편의 잔혹 동화같이 보인다.
당시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고 루소의 '부족한 회화 실력'을 비웃었지만, 훗날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이 기묘한 조화에서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고 한다. 핏빛으로 물든 붉은 하늘과 불길한 검은 말의 대비는 이미 그림을 그리던 날보다 20년 전에 발발했던 1870년 보불 전쟁의 참상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조형 언어로 전쟁을 맹렬하게 비난한 것이다.

보불전쟁 출처 : namuwiki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 Musée d'Orsay)
센 강변에 당당히 서 있는(루브르와는 센 강 대각선 맞은편) 이 멋진 미술관은 본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던 기차역 오르세역(Gare d'Orsay) 이었다. 한때는 모네의 생 라자르역의 그림처럼 증기를 내뿜는 기관차가 드나들었고 크지는 않지만 승객들의 편의를 위한 작은 호텔의 역할까지 하던 곳, 심지어 나중에는 영화 촬영 장소, 주차장으로까지 이용되다가 1986년에 현재의 미술관으로 새로 재건축이 된 것이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상주의 거장들 작품의 안식처가 되었다.

출처 : museeorsay instagram
미술관의 상징인 거대한 5층의 시계 뒤편에서 기념사진을 꼭 찍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살롱전에서 낙선되었던 작품들이 대거 전시된 그야말로 인상주의 작품들의 보고가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연도 하나를 알려드리자면 1848년. 이 연도 이전 작품들은 루브르에 전시되고 1848년(프랑스의 2월 혁명)부터 제작된 작품들은 오르세로 이전되어 전시된 것이다.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벨 에포크가 끝나며 현대로 들어선 역사적 분기점에서 퐁피두 센터 내의 국립 현대 미술관으로 현대 미술 작품들이 이관된 것이다.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