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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3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3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단 한 명의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는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ABC 구조의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통상적인 ABC 구조와 다른 방식의 ABC 구조를 함께 살펴본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6화 깐부 편에서 살펴보는 스토리텔링 기법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화제가 된 스토리를 하나만 꼽으라면 오징어게임이 될 것이다. 오징어게임은 2021년 9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후, 시청자 수, 수익과 비평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오징어게임은 세계적으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으며, 2021년 에미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을 하며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오징어게임,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었던 6화 ‘깐부’ 편에서 사용된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그 변주를 살피고 그 효과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전체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빚더미에 앉게 된 백수 기훈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의문의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곳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매번 벌어지는 게임에서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경쟁을 펼친다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전체를 꿰는 핵심 구조 역시 ABC 구조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글에서 다룬 ABC 플롯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주인공 기훈 vs 게임 설계자가 될 것이다. 기훈은 456억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획득하기 위해, 각 단계마다 설계자가 짜놓은 게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만 한다.

두 번째는 기훈 vs 다른 게임 참가자이다. 드라마 속 게임의 규칙 상, 게임에서 승리한 자는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지만, 실패한 자는 끔찍하게도 게임의 운영자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따라서 매번 상대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기훈은 함께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기훈을 통해 투영되는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


주인공 기훈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가 승리하거나, 상대적으로 약자인 참가자들과 힘을 모아 한 단계 씩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함께 승리의 기쁨을 느끼며 스토리 속에 몰입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난과 같은 각자의 이유로 참가한 사람들이 패배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때 안타까움과 슬픔,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이는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언급한 것처럼, 오징어게임 속의 게임과 게임의 규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극도의 무한 경쟁에 대한 비유이며,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훈, 또는 기훈이 속한 팀의 승리의 반복이라는 형태로 진행되던 스토리는 6화 ‘깐부’편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5화까지 진행된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같은 개인 간의 대결, ‘줄다리기’같은 단체 경기 순서로 진행되었다. 두 사람씩 팀을 이루라는 지시에 살아남은 기훈과 참가자들은 가족끼리, 또는 이곳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팀을 꾸린다. 오직 승리만을 위해 단기간 전략적 동맹을 맺은 자들도 있다.


그리고, 미션으로 구슬 뺏기 게임이 제시된다. 기훈은 팀이 된 노인 일남과 깐부를 맺고 ‘동네 구슬을 싹 다 쓸어버리자’고 호언장담하지만 게임은 2명의 팀 안에서 승자를 가리는 것이었다. 기훈과 참가자들은 당황한다. 이번에는 기훈 vs 설계자의 대결에서 설계자가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ABC 구조를 벗어나 강새벽과 지영이 선택한 것


한 명이 승리하면, 다른 사람은 탈락하고 죽음을 당하는 게임에서 그들은 한 개의 구슬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이 잔인한 게임의 규칙 앞에서는 부부도, 친구도, 동맹도 없다. 오직 자신만이 살겠다는 본능뿐이다. 이타적인 행동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온 주인공 기훈마저도 자신이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일남의 치매 증세를 이용한다.


모든 곳에서 오로지 ABC 구조에 기반한 대결이 벌어지고 있을 때, 오직 강새벽과 지영만이 다른 선택을 한다. 모두가 구슬 뺏기 승부에 몰두하는 동안, 지영은 새벽에게 승부는 단판으로 결정짓자고 제안하며, 그동안 대화나 나누자고 한다. 이 대화를 통해 지영은 새벽이 탈북자가 된 과정, 부모와 헤어지고, 동생이 보육원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벽 역시 지영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되었다가 나왔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그들은 시간을 멈추고, 주어진 게임과 게임의 룰을 거부하는 발상의 전환을 택한 것이다. 모두가 상대를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데 반해, 둘은 대화를 통해 참가자 67번과 240번이 아니라 피와 살을 지닌 인간, 고단한 인생을 꿋꿋이 살아온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은 인문학적이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주어진 시간이 거의 다 흘렀을 때, 지영은 일부러 새벽에게 게임에서 지는 선택을 한다. 새벽에게 승리가 더 소중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결정한 고귀한 희생이었다. 스토리텔링 면에서 보자면, 지영의 선택은 통상 지켜야 할 플롯의 기본인 ABC 구조에 대한 전복에 가깝다. 배우의 대사와 연기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에서 따르는 것이 당연한 플롯의 규칙 자체를 파괴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할 수 있는 고귀한 사랑만이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구원의 빛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성복 시인의 아포리즘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것은 생리이며, 결코 인간적이라 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사랑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식에 숙달되는 것이다.’ 1)


1) 이성복 아포리즘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문학동네


김경모 작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하였다.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의했다.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스테리야’의 스토리를 집필했으며, 현재 제주에 머물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