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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㉑유대인 공동체 지원의 핵심- Jewish Agency를 아시나요?
이스라엘에는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전역과 전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를 위한 핵심적인 기구로 활약하고 있는 바로 그 기관, Jewish Agency for Israel(이스라엘 유대인기구)입니다.
이미지 출처 : Jewish Agency 공식 홈페이지
1929년 설립된 이 기구는 이스라엘 정부기관은 아니지만, 준정부기관(parastatal organization)으로서 독특한 법적 지위를 지니고 있으며, 연간 약 4억 달러(한화 약 5,400억 원)의 예산으로 전 세계 65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에서, 이 기구는 유대인 공동체를 위한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구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배경에는 국제적인 법적 근거가 있습니다. 1922년 국제연맹이 부여한 특별 헌장에 따라 설립되었으며, 1952년 이스라엘이 제정한 ‘세계 시온주의 기구–유대인기구 지위법’을 통해 준정부기관으로서의 법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준정부기관이라고 하면 정부의 통제를 받을 것 같지만, 이 기구는 완전히 독립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핵심 자금을 받지 않으며,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 각지의 유대인 공동체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2023년 기준 Jewish Agency의 예산은 약 3억 9,500만 달러이며, 주요 재원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Jewish Agency 공식 홈페이지
이 가운데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북미 유대인 연합회(JFNA)의 무제한 핵심 자금입니다. 이 자금은 위기 시 긴급 대응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거나 다른 재단의 자금을 끌어오는 매칭 펀드 역할을 하며, 조직 운영 전반에 필요한 급여, 회계, 보안 등 필수 경비도 충당합니다.
이 기구의 의사결정 구조 역시 독특하고 민주적입니다.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Assembly를 중심으로, 전 세계 유대인 단체 대표자 120명으로 구성된 이사회(Board of Governors)가 존재하며, 여기에는 북미 유대인 연합회, Keren Hayesod, 종교 단체, 세계 유대인 및 시온주의 단체, 이스라엘 정당 등의 대표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사회는 정책 수립과 운영에 대한 감독 역할을 하며, 집행위원회는 실무를 맡고, 사무총장실은 전체 조율을 담당합니다.
이미지 출처 : Jewish Agency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이 기구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할까요?Jewish Agency는 정부가 하기 어려운 활동들을 민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합니다. 전 세계 500개 이상의 유대인 공동체를 연결하는 Partnership2Gether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문화사절인 슐리힘(שליחים) 3,000명을 전 세계에 파견하여 유대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전파합니다. 특히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주목할 만합니다.
1. Taglit–Birthright Israel: 18\~26세 유대인 청년을 대상으로 10일간 이스라엘을 무료로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
2. Masa Israel Journey: 18~~30세 청년대상, 5~~12개월의 장기 체류 프로그램
이러한 프로그램은 외교 정책의 제약 없이 문화적·교육적 목적으로 운영되며, 수많은 해외 유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또한 Jewish Agency는 위기 대응에도 민간 차원에서 빠르게 나섭니다. 예를 들어 2025년에는 2,300만 달러가 넘는 긴급 구호 자금을 투입했으며, 테러 피해자들을 위한 Fund for Victims of Terror 프로그램을 통해 테러 발생 48시간 이내에 긴급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에는 8,425건의 긴급 지원과 3,369건의 재활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관의 고령층 지원 활동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Amigour라는 자회사를 통해 이스라엘 전역 57개 시설에서 7,500명의 취약 고령층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구소련 출신 이민자 혹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월 임대료는 단 75\~90달러 수준이며, 입주 자격은 국민보험공단으로부터 월 800달러 이하를 받는 저소득 고령층입니다. 현재 27,000명이 대기 중일 정도로 수요가 많습니다.
Amigour는 주거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위한 사회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재무부, 건설주택부와 협약을 맺고 2025년까지 총 3,000개의 신규 보호주택을 짓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분산형 모델을 채택해, 대규모 단지 대신 기존 도시 환경 내 소규모로 건설함으로써 고령층이 기존 지역사회와의 연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는 ‘지역 계속거주(aging in place)’ 철학에 기초한 방식입니다.
이미지 출처 : Jewish Agency 공식 홈페이지
이스라엘의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해 고령층의 주거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공공주택 대기자의 3분의 2가 고령층입니다. 이 가운데 절반이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Jewish Agency는 이들에게 특별한 책임감을 갖고 있으며,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역사적·도덕적 의무로 인식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Jewish Agency는 정부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원화된 재정 구조, 민주적 거버넌스, 전 세계 유대인 공동체의 연대 덕분입니다. 특히 고령층을 향한 지원은 유대인의 역사적 경험과 공동체의 가치를 반영하여 ‘존엄한 노년’을 실현하는 중요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델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도 깊은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한국의 고령층 주거 정책도 단순한 주택 제공을 넘어서, 지역 사회와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전쟁 세대나 홀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선 복지의 논리를 넘어서 도덕적 책임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둘째, 교회는 고령층을 위한 정서적·영적 공동체로 기능해야 합니다. 고독사 예방, 생활 돌봄, 예배 공동체가 통합된 ‘선교적 공동체’ 모델이 필요합니다. 국가 제도와 정책의 빈틈을 메우는 민간 차원의 돌봄 연대는 교회가 감당할 사명입니다. 결국, 한국 사회와 교회는 고령층을 단순한 복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존엄을 지키는 돌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선교적 책임이며, 시대적 요청입니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