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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2022-09-28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1

#1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 '1984'를 중심으로


연극, 소설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스토리텔링.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도 고객에게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나 곧 출시된 제품의 마케팅을 위해 스토리텔링을 이용한다.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을 알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그 기초가 되는 ABC 구조란 무엇인지 김경모 작가에게 들어본다.



스토리텔링이란?


오늘날 스토리텔링은 연극, 소설과 같은 전통적인 형식에서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에서까지 고객에게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나 곧 출시된 제품의 마케팅을 위해 스토리텔링을 이용한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위키백과에서는 스토리텔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알리고자 하는 바를 단어, 이미지, 소리를 통해 사건, 이야기로 전달하는 것이다. 스토리 또는 내러티브(narrative)는 모든 문화권에서 교육·문화 보존·엔터테인먼트의 도구로써, 또 도덕적 가치 등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사실 또는 경험의 저장 등 효율적인 정보전달 그 이상의 가치로써 공유되어 왔다. 스토리텔링은 단어, 이미지, 소리 등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으로 축적된 정보를 주제와 본래의 목적에 맞게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하나의 사건을 가진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플롯(plot), 캐릭터(character), 그리고 시점(time line 또는 Time point)이 포함되어야 한다.”

어떤가? 이 정의 역시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좀 더 쉽게 접근해 보자. 스토리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없다면, 아무리 그 소재가 중요하고, 다루는 주제가 깊이가 있고 감동적이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장치, 그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의 기초 - ABC 구조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이야기 구조 – 처음, 중간, 끝, 동양의 ‘기승전결’ 구조, 서양의 5막 플롯 - 로 넘어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스토리텔링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ABC 구조이다. 거창하게 구조라는 말을 썼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여기서 A와 B는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을, C는 그들이 원하는 공통의 목표를 의미한다. 즉,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공통의 목표를 얻기 위해 서로 대결한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보이는 이야기라도 뼈대가 되는 이야기의 핵심은 대부분 이 대결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우연히 부자의 집에 들어가게 된 가족이 들키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기생충). 가난한 백수는 거액의 상금을 얻기 위해 설계자가 짜놓은 게임에서 경쟁자들을 이기고 살아남아야 한다. (오징어게임).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두 작품 역시 간단한 구도 위에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냉장고를 부탁해


ABC 구조는 서사 장르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까지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대부분의 방송 채널에서 아침에 방송되던 요리 프로그램은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시청자들을 위한 구색 맞추기용 콘텐츠였다. 전문 요리사가 비전문인 연예인과 함께 나와 그날 만들 요리의 재료를 소개하고 순서대로 요리를 설명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가까웠던 것이다.





이 전통적인 포맷에 ABC 구조를 도입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프로그램이 바로 ‘냉장고를 부탁해’였다. 1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오직 출연자의 냉장고에 오래 묵혀있던 식재료만을, 그리고 최고의 요리사들이 출연자의 의뢰에 꼭 맞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경쟁한다는 포맷은 ‘냉장고를 부탁해’를 단숨에 시청률 10%가 넘는 화제의 프로그램이 되는데 기여했다.


ABC 구조의 기원


ABC 구조에 본능적으로 흥미를 가지게 되는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유전적으로 나, 혹은 나와 가까운 집단이 살아남는 것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축구, 야구와 같은 대중 스포츠나 국가 대항전이 열리는 올림픽에서 자신이 속한 국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에서 ABC 구조의 기원을 설명하기도 한다. ABC 구조는 고대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구술 문화,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여러 신화, 민담, 설화 등에서부터 이미 사용되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을 위협하는 대자연의 공포, 다른 부족, 혹은 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은 노하우들을 이야기에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이 구조를 사용한 것이다.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극한의 과정 속에서 일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용기, 사랑, 신념, 희생정신과 같은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치들을 느끼게 해준다.


애플 매킨토시 광고 ‘1984’

단순히 재미만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냄에 있어서도 ABC 구조는 뛰어난 기능을 발휘한다. 이제는 전설이 된 애플의 1984년 ‘매킨토시’ 광고를 살펴보자.





1984년, 미국 슈퍼볼 경기의 하프 타임 후, 애플의 신제품 매킨토시를 소개하는 60초짜리 광고는 회색 옷차림의 남자들이 넋 나간 표정으로 좁은 길을 따라 행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때, 붉은 운동복 반바지를 입은 금발 여성이 올림픽 투포환 경기에 쓸 법한 큼직한 해머를 들고 달려 나온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헬멧을 쓴 경찰이 그 뒤를 쫓는다. 행진하던 남자들은 널찍한 방안으로 들어서는데 그 안에는 비슷한 모습을 한 수백 명이 공허한 눈으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스크린 속의 안경을 쓴 남자는 거만한 모습으로 획일화에 관한 연설을 쏟아내고 있다. 곧 금발 여성이 방에 들어서서 두 바퀴를 회전하더니 해머를 던진다. 공중으로 날아간 해머는 비디오 화면을 박살 내고, 화면이 폭발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남자들의 놀란 얼굴 위로 흩어진다. 그리고 해방을 상징하는 이 장면 위로 다음과 같은 자막이 나타난다. ‘1월 24일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선보입니다. 그러면 귀하는 1984가 왜(조지 오웰의) 1984와 다른지 알 것입니다.’

ABC 구조에 대입해 보면, A는 해머를 든 여성, B는 스크린 속의 남성, C는 죄수를 연상시키는 남자들이 될 것이다. A와 B의 갈등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 후, 빅브라더의 통제 아래 세뇌된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스토리로 자유와 해방이라는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모티브를 가져와 당시 컴퓨터 시장의 ‘골리앗’이었던 IBM에 대항하는 ‘다윗’ 애플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참고영상


애플광고 1984





김경모 작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하였다.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의했다.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스테리야’의 스토리를 집필했으며, 현재 제주에 머물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