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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2-08-26

영국 문학기행으로 알게 된 것



문학과 신앙 사이에 선 크리스천들에게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해 온 이정일 목사. 그는 얼마 전 영국 문학기행에서 돌아왔다. 역사 속 저명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훑으며, 죽음 이후의 영향력 또한 목도한 듯하다. 일정 내내 작은 수첩에 담고 담았을 생생한 단상을 모아 에덴미디어 독자들에게 전한다. 에디터. 황은비  



한국은 분주한 사회이다. 그래서 다들 여름휴가를 기다리지만 막상 주어지면 알차게 쉬는 법을 모른다. 대개는 산이나 바다로 가서 잘 놀고 잘 먹고 오면 휴가를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휴식은 몸이 쉬는 게 아니라 마음이 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영국에 와 보니 여행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이들이 많다. 때로는 아주 낯선 곳에서 진정한 휴식을 만날 수 있다.


리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잘생긴 배우를 좋아하고 어떤 이는 노래 잘하는 가수를 좋아한다. 드물지만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있다. 생전엔 미운털이 박혀 고생을 많이 했지만 죽은 후엔 달랐다. 그가 묻힌 파리의 묘지는 명소이다. 팬들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공원에도 비스듬히 누워 있는 그의 흉상이 있는데 이곳도 상황은 비슷하다.



영국 베드포드에서는 작가 존 번연의 생가 엘스토우와 세례를 받은 교회도 만날 수 있다. 편집자 주. 출처: Shutterstock


한번은 늦은 저녁 교회를 찾아갔다. 영국에서 여름은 저녁 9시 30분은 되어야 해가 떨어진다. 그 한 줌 남은 빛에 의지해 교회 묘지석을 훑고 다녔다. 얼핏 보아도 몇백구는 넘을 묘지석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이정표가 없어 난감했다. 보통 유명인은 묻힌 장소를 잘 보이게 표기를 해놓는데 그곳은 아니었다. 한참 헤매다 우리처럼 작가를 찾아온 한 커플을 만났다. 덕분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묘지를 찾을 수 있었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 작가로 유명한 톨킨J.R.R. Tolkien과 C. S. 루이스C.S. Lewis는 절친이었다. 둘 다 영문학을 가르쳤다. 이들은 칼리지들이 모여 있는 옥스퍼드의 한 펍에서 자주 만났다. 또 이들이 가르친 칼리지 근처에 산책로가 있는데 이곳을 자주 걸었다. 걸으면서 자신들이 쓰고 있는 소설 이야기를 나누었고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누기도 했다.


죽으면 잊힌다고 여기지만 작가들을 보니 아니었다. 한 달여 도버에서 에든버러를 거쳐 벨파스트까지 훑으며 영국 작가들이 남긴 자취를 찾아다녔다. 삶과 죽음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 도처에서 이들이 남긴 삶의 자취를 만났다. 런던의 비국교도 묘지에 가보니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존 번연 John Bunyan의 무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고 길 건너편에선 존 웨슬리John Wesley 동상이 멀리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마을로 알려진 영국 하워스는 전세계에서 많은 이들 찾는다. 편집자 주. 출처: Shutterstock


A. J. 크로닌A. J. Cronin이란 작가가 있다. 의사이자 소설가였고, 『천국의 열쇠』와 『성채』를 썼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찾았을 때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었다. 우연히 만난 이웃집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공사를 하는 인부들은 그를 알고 있었다. 1차 대전 때 공습을 피해 어디로 피난했는지 알려주었다. 스코틀랜드 악센트가 세서 겨우 30퍼센트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작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작가의 집을 못 보아서 아쉬웠지만, 공사 현장과 주변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나섰다. 그런데 인부 한 분이 내 손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지 생각하는 짧은 순간, 도자기 파편 두 개를 손에 쥐여 주었다. 작가의 집에서 찾아낸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실수로 깼을 것이다.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보물처럼 느껴졌다. 그 작은 것을 통해서도 작가와 연결되는 끈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들 소설 『폭풍의 언덕』을 알 것이다. 작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는 거의 서른 해를 하워스Haworth라는 마을에서 살았다. 하워스는 잉글랜드 중부의 요크 지방에 있는데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다. 그런데도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에밀리 브론테가 살았던 마을과 그녀가 걸었던 폭풍의 언덕 무대가 된 산책길을 걷기 위해서. 에밀리 브론테를 볼 때마다 새삼 느낀다. 삶과 죽음은 경계가 없다는 것을.


이번 기행에서 만난 유명작가들의 묘지에서 보니, 그들과 함께 묻힌 사람들은 무명인이다. 같은 교회 묘지에서도, 몇백 년의 시간차가 나기도 한다.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죽음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이 사라진 후에도 주님 품에서 안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묘지석은 세월의 무심함으로 이끼 속에 묻혀 있고, 간혹 나와 같은 사람이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묘지석을 따라 걸으며 이끼에 감춰진 이름들을 읽었다.


영국에서 교회와 성당은 거룩한 공간이다. 동시에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공간이다. 성당에는 묘지석이 벽이나 바닥에 붙어 있고, 교회에선 교회 묘지가 예배당과 이어져 있다. 한국은 죽음을 멀리 생각해 흔히 묘지가 도심 밖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영국에서는 죽음이 삶과 함께 공존한다. 죽음을 밀어내지 않고 가까이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좌) 베드포드에서 만난 아내의 묘지를 돌보는 노인, (우) 런던의 윌리엄 블레이크 묘. 사진: 이정일


그러고 보니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의 고향 베드포드에서 보고 기억나는 죽음이 하나 생각난다. 베드포드엔 존 번연이 회심을 한 시장터와 세례를 받은 교회가 지금도 건재하다. 그곳을 방문해 교회 안팎을 사진에 담다 보니 뜨거운 여름 햇살 속에 교회 묘지 울타리 옆에 한 남자분이 서 있었다. 나이가 지긋했다. 무엇을 하나 봤더니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아내의 묘지를 돌보고 있었다. 잊히는 죽음이 없듯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여행 초반 프랑스 칼레에서 페리를 타고 도버 항구로 들어갈 땐 미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같은 작가들을 찾다 보니, 연결고리는 교회에 있었다. 그들의 삶과 마지막은 반드시 모두 교회로 연결된다. 시골과 도시, 어디를 가나 교회 마당에 선 묘지석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며 다시금 깨달았다. 죽음은 잊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정일 목사

미국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했다. 신학을 하기 전에 영문학을 공부하여 문학 박사를 받은 후 뉴욕주립대 영문과에서 미국 현대시를,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제3세계 작가들을 연구했다.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SF소설을 가르치며 전방부대 교회에서 군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