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의031-645-9191

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5-06-28

서로 돌보는 마을, 함께 늙어가는 삶

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서로 돌보는 마을, 함께 늙어가는 삶: 이스라엘 ‘서포티브 커뮤니티’ 이야기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키리야트 모셰(Kiryat Moshe). 25년 전 이 평범한 주거 지역에서 조용히 시작된 하나의 실험이, 오늘날 이스라엘 전역을 포괄하는 고령자 돌봄의 혁신 모델로 성장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케힐라 토메헤트(Kehila Tomechet)’라 불리는 ‘서포티브 커뮤니티’는 단순한 사회 서비스가 아니라, 공동체가 고령자를 ‘다시’ 품는 방식에 대한 깊은 재고찰이자 실천의 장입니다.



이미지 출처 :  Jerusalem Post, “Assisted Living at Home”

이 프로그램은 이스라엘의 고령자 서비스 기획 및 개발 전문기관인 ‘에셸(Eshel)’과 노동사회복지부가 공동으로 개발했습니다. 2017년 기준, 260개 커뮤니티가 이 모델을 따르고 있으며 약 52,000명의 회원이 매달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고령 인구의 7%가 이 프로그램의 회원이라는 점은, 케힐라 토메헤트가 단순한 실험을 넘어 일상 속 복지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이 프로그램의 구조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뉩니다.

첫째, ‘커뮤니티 부모’입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공동체 내에서 고령자들의 친근한 1차 연락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전화 한 통이면 달려오는 이들은, 간단한 집안 수리부터 응급 상황 대응, 병원 동행, 식사 배달 등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함께합니다. 정기적인 안부 전화와 방문은 외로움의 시간을 줄여줍니다. 때로는 단순한 가구 이동이지만, 그것이 고령자에게는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은 잘 압니다.
둘째, 의료 서비스입니다. 회원에게는 24시간 다국어 콜센터가 제공되며, 휴대용 호출 버튼을 통해 응급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의사와의 상담, 가정 방문, 병원 이송도 포함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별도의 의사 소견서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령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셋째, 사회적 고립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입니다. 지역사회의 언어와 문화를 고려하여 구성된 프로그램은 강연, 공연, 여행 등으로 다양하게 운영되며, 고령자들이 삶의 의미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특히 아랍계 이스라엘인, 초정통파 유대인 등 다양한 인구집단을 포용한다는 점에서 이 모델은 문화적으로 매우 유연한 시스템을 보여줍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마이어스-JDC-브룩데일 연구소의 평가에 따르면, 참여자의 80%가 프로그램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고 응답했고, 응급 호출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91%는 그 경험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회원 중 약 70%는 프로그램이 자신에게 안전감을 제공한다고 했으며, 33%는 자녀의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모델이 고령자만이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서포티브 커뮤니티 회원의 자녀는 비회원의 자녀에 비해 역할 스트레스가 낮고, 삶의 질은 높았으며, 부정적인 감정 표현도 적었습니다. 즉, 이 커뮤니티는 ‘나이 들어가는 한 사람’을 중심에 놓되, 그를 둘러싼 관계 전체를 함께 돌보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현재 JDC-에셸은 차세대 파일럿을 운영 중입니다. 고령자 인구 증가와 기대수명 연장에 대응하여 더욱 세분화된 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입니다. 특히 간병법과의 통합을 통해, 기존 제도 안에서 서포티브 커뮤니티를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를 위한 맞춤형 사회 프로그램이 확대되며, 고립감 해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2025년 3월부터는 국가보험제도(National Insurance Institute)가 이 프로그램을 공식 장기요양 서비스로 인정하여 바스켓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서포티브 커뮤니티’를 일시적인 시범사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공공 돌봄 인프라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제도권 안으로의 편입은 프로그램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높여, 더 많은 고령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신청은 콜센터(*2637) 또는 웹사이트를 통해 가능하며, 월 회비는 135셰켈(약 54,000원)면 충분하고, 절반 이상의 회원이 보조금을 통해 비용을 보전받고 있습니다.

서포티브 커뮤니티는 복합적 자금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정부, JDC-에셸,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 등이 참여하는 파트너십 모델은,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복지 전달을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책임과 연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문화적 적응력, 지역 맞춤형 서비스, 고령자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이 모델의 최고 장점이며, 이스라엘 프로그램답게 연대하는 일에 무엇보다 적극적입니다.

이스라엘의 ‘케힐라 토메헤트’ 서비스는 우리에게 어떤 점을 알려줄까요? 고령인구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계속 거주를 실현할 수 있게 하여 ‘제자리에서 나이들기’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는 고령자를 단지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공동체의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든 인간은 두 번 죽는다. 땅에 묻힐 때와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 “Every man has two deaths, when he is buried in the ground and the last time someone says his name” 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기억되는 한 살아 있고, 물리적 생명이 끝난 후에도 기억과 영향력을 통해 계속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자리에서 나이들기’는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기억 속에 머무는 삶을 말합니다.

공동체적 돌봄의 실천은 이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입니다. 이것은 단지 사회복지의 선택이 아니라, 신앙의 실천이자 부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름은 매일 아침 마주하는 이웃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부터, 교회 공동체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