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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9

장 미셸 오토니엘이 만든 꿈의 정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시실과 덕수궁 정원에서 만난 장 미셸 오토니엘의 미감 가득한 작품들은 한여름 무더위를 충분히 잊게 만들만 하다. 8월 7일까지 열리는 <장 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으로 짧은 여름 휴가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지난 6월 중순, 며칠간 미술계뿐 아니라 패션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지인들의 인스타그램을 도배한 전시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이다. ‘유리구슬 조각’으로 알려진 오토니엘은 1992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미술관과 국제 주요 미술 행사에 참여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아 왔으며 무라카미 다카시, 제프 쿤스, 이우환 작가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거쳐간 베르사유 궁전에 ‘아름다운 춤’을 영구 설치해 동시대 영향력 있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시립미술관 전시장에 설치된 ‘아고라’ 내부에 앉아 있는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 2021 © Jean-Michel Othoniel Adagp, Paris, 2022



오토니엘을 상징하는 작품 중 하나는 이처럼 반짝이는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구슬 매듭이다. 이번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미술관 전시에도 이와 같은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 Kim YongKwa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오토니엘은 국내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2011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그룹전 등을 통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국제 갤러리에서는 유리, 스테인리스스틸, 금박 등 장식성을 띤 물질을 이용한 그의 작품을 꾸준히 소개했고 덕분에 국내 아트 컬렉터들은 집과 오피스에 오토니엘의 작품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최근 1~2년 사이 오픈한 청담동의 핫한 레스토랑에는 그의 작품이 어김없이 설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듯이 오토니엘은 갤러리와 미술관 전시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오토니엘은 위와 같이 천정에 설치하는 조각 작품이 대중들에게 주로 알려져 있다. ⓒ Kim YongKwa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라 불리는 이번 전시에서 오토니엘은 자신의 주요 작품 74점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덕분에 관람객은 작가의 최근 10년 간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전시 오프닝엔 전 국가대표 피겨선수인 김연아와 배우 차은우가 등장하며 여느 패션 하우스 주관 파티를 연상시켰는데, 이는 전시 후원자인 글로벌 패션 명품 브랜드 디올의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미술관 정원 두 곳에서 동시 선보이고 있는 이번 전시는 제목 ‘정원과 정원’처럼 예술을 통해 다시 보게 되는 장소의 의미와 함께, 관객의 마음에 각자의 개성대로 정의되는 사유의 정원의 범주를 포괄한다. 오토니엘 또한 정원은 ‘현실을 잊고 환상의 세계를 꿈꾸는 마법의 공간이자, 영감이 떠오르는 숨겨진 보물창고 같은 곳’이라고 자신의 정원을 정의한바 있다. 정원에 대한 열망이 컸던 만큼 오토니엘은 서울시립미술관과 인접한 덕수궁을 자신의 마법을 펼쳐 보일 공간으로 선택했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덕수궁 정원 전시를 먼저 보고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덕수궁 전시전경 © CJY ART STUDIO


덕수궁의 연못에 설치된 황금색 조각들의 이름은 ‘황금 연꽃’과 ‘황금 목걸이’. 오토니엘은 지금껏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 전통 건축과 공예에서 주로 사용된 연꽃문양에 관심을 가졌다. 연꽃을 진흙에서 꽃을 피운다는 특징이 있는데, 작가는 이점에 착안해 ‘혼탁한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고통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불교적 메시지를 ‘황금 연꽃’에 담았다. 오토니엘을 대표하는 목걸이 형태의 조각은 이미 전 세계 곳곳의 정원을 수 놓은 작품. 덕수궁 연못 중앙에 자리한 작음 섬의 소나무에 설치된 세 점의 ‘황금 목걸이’는 연못이 가장자리에서만 관찰 가능한 것으로 관람객들이 마치 숨어있는 보물을 찾아 내는 듯한 설레임과 재미까지 선물한다. 연못에 설치된 황금 작품 시리즈는 한여름 정원이 가진 짙푸른 녹음과 미스터리한 조화를 선사하며 자연과 예술이 만나 이루어 내는 본질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전시전경 ⓒ Kim YongKwa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자두꽃 3, 4, 5(삼면화), 2022, 캔버스에 페인팅, 백금박 위에 컬러 잉크, 각 164 × 124 × 5 cm. ⓒ Kim YongKwa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덕수궁미술관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로 이동하면 본격적인 개인전이 펼쳐진다.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대형 작품은 2019년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검정 잉크 페인팅의 ‘루브르의 장미’와 꽃과 꽃가루의 확산 에너지에 저항의 기운을 담은 삼면화 ‘자두꽃’ 신작. 작가가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처음 선보인 ‘자두꽃’은 ‘루브르의 장미’를 변형시킨 것으로 덕수궁 내 건축물에 사용된 오얏꽃(자두꽃의 고어) 문양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자두꽃 잎 사이로 황금빛 노란색이 흐르는 모습이 마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관객은 사유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푸른 강, 2022, 청색 인도 유리 벽돌, 26 × 7.1 m. ⓒ Kim YongKwa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평면화를 충분히 감상한 뒤 마주하는 화려하고 거대한 설치 작품은 오토니엘식 장식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상처를 품고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펼친다’는 의미를 담은 ‘푸른 강’은 오토니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크기로 길이 26미터, 폭 7미터에 달하는 바닥 설치 작품이다. 작가가 유리 장인들과 함께 제작한 유리 벽돌 7,500여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시팀은 이 벽돌을 상자에서 꺼내는 작업만 5일이 걸렸다고 밝혔다. 벽돌의 반짝이는 푸른빛이 ‘물’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뭉환적인 느낌을 자아내 비현실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푸른 강’ 위에 설치된 14개의 거대한 유리 매듭 조각은 작가의 의도대로, 서로의 모습을 반사하며 오토니엘이 만든 하나의 시적인 우주를 보여준다. 잔잔히 흐르는 푸른 색의 강물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벽돌이라는 모듈을 사용해 마침내 자신의 작업을 건축적 규모로 확장시킨 듯 보인다.



프레셔스 스톤월, 2022, 청색과 파우더 핑크 인도 거울 유리, 나무, 33 × 32 × 22. ⓒ Kim YongKwa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오라클, 2022 ⓒ Kim YongKwan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푸른강’ 작품 주변에 설치된 작품들은 유리 벽돌을 육면체 부조로 설치한 ‘프레셔스 스톤월’과 도널드 저드 작품에서 느껴지는 엄격한 질서를 연상시키는 ‘오라클’이다. 작가가 이러한 유리 벽돌을 이용한 작업을 시작한 건 2009년. 한참 전 다녀온 인도 여행에서 사람들이 언젠가 자신의 집을 짓겠다는 희망에 벽돌을 쌓아 두는 것을 보고 큰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고. 장인들이 직접 입으로 부는 전통적 방식으로 제작된 유리 벽돌 작품은 각자 다른 형상과 빛깔을 소유하고, 각기 다른 미니멀한 벽돌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 모여 비로소 정제된 미학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작가는 특히 직관적 아름다움을 내재하고 있는 ‘오라클’ 작품을 가리켜 가장 순수하고 시적인 작품이라고 표현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현대 산업의 산물과 같은 미니멀한 형태와, 불꽃처럼 일렁이는 반사광으로 표현된 이 작품들은 전시에서 인디언 핑크, 샤프론 엘로, 에메랄드 그린 등의 신비로운 색감으로 관객들을 기분 좋은 상상의 여정으로 이끈다.



〈아고라〉, 2019 © Othoniel Studio Jean-Michel Othoniel Adagp, Paris, 2022


2,750개의 스테인리스스틸 벽돌로 만들어진 ‘아고라’는 작품이 공간을 구성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공간을 창조한다는 오토니엘의 작가적 의도가 가장 크게 반영된 작품이다. 건축적 요소가 다분한 이 작품은 움막 형태를 띠고 있으며 관람객은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앉아 일정 시간 머물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전통 움막, 동굴, 그리고 무덤의 변형같이 보이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관객들이 ‘각자의 내면에 방치된 꿈과 상상의 세계를 되찾는 묵상과 대화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개개인이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일종의 은신처가 되기도, 둘 이상 모여 앉아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이 작품은 조각과 건축 사이 어디 즈음인가 위치하는 오토니엘의 작품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김이신 CMO, ㈜에이트(AIT)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거쳐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전해왔다. 현재는 디지털아트 NFT 플랫폼 '에트나' 운영사인 (주)에이트(AIT, Art Investment Technology)의 CMO를 맡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