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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

에덴클래식 #19 꿈꾸게 하는 클래식



우리는 저마다 현실의 오늘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를 꿈꾼다. 때로는 실현되기 어려워 더욱 간절해지는 그 꿈은 음악을 통해 벅찬 감동과 애잔한 여운을 남길 수 있다. 이번 달에는 웅장하고 뜨겁게 고향을 꿈꾼 음악가의 이야기를 만나 본다. 에디터. 황은비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Dvořák,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높아

지금은 사라진 친구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반딧불 쫓아서 즐거웠건만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꿈속의 고향’이라는 제명으로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노래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서글픈 가락은 이내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중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노래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음에도 실기시험 시간에 이 노래를 불러 성적이 꽤 좋게 나왔던 기억이 있다. 훗날 클래식 음악에 빠져들게 되면서 이 ‘꿈속의 고향’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의 2악장의 주제 선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뿌듯한 희열감을 느끼기도 했다.



프라하 드보르자크 박물관에서 생전에 사용하던 피아노, 책상 등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19세기 말엽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후기 낭만주의 음악, 그리고 프랑스의 드뷔시, 라벨 등 인상주의 음악이 기존의 전통을 파괴해가며 20세기 현대음악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1841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속국인 보헤미아왕국(현 체코)에서 태어난 드보르자크Antonin Dvořák (1841~1904)는 시대적으로나 지리적 여건상 독일 후기 낭만주의에 가까웠으나 작품 경향은 그들과 달랐다. 바그너와 대립적 성격의 작곡가인 브람스와 마찬가지로 고전주의 형식을 지켜나가는 한편, 보헤미아의 국민주의 음악 선구자인 스메타나의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적 성격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보헤미아 민속 춤곡을 바탕으로 한 ‘슬라브 무곡Slavonic Dances’,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작곡한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의 슬픔을 표현한 곡)’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드보르자크는 1890년(49세)에 프라하 음악원 교수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는 등 음악가로서의 성공적인 길을 밟아나갔다. 그리고 1892년(51세)에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드보르자크는 지금의 체코인 보헤미아왕국에서 태어나 프라하국립음악원의 교수, 학장을 지냈다.


드보르자크는 1885년에 창설된 미국 뉴욕의 국립음악원The National Conservatory of Music of America으로부터 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프라하 음악원 교수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먼 이국땅에서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 망설였으나, 프라하 음악원 교수직 연봉의 15배가량의 파격적인 조건은 결국 드보르자크를 미국으로 향하게 했다. 1892년부터 약 3년간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그는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첼로 협주곡, 현악사중주 ‘아메리칸’ 등 그의 최고 걸작들이자 모든 낭만주의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곡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신세계인 미국에 도착한 첫해에는 바쁜 일정으로 인해 작곡에 손을 대지 못했으나 환경에 적응한 후 그의 창작력은 절정에 달했다. 흑인 영가와 아메리카 인디언 음악에서 받은 인상을 작품에 반영하는 한편, 고국에 대한 향수가 담긴 보헤미안 선율을 가미해 드보르자크 특유의 애절하고 목가적이면서도 진한 그리움이 가득한 아름다운 가락들을 창조해냈다.


미국에 도착한 이듬해인 1893년 초, 어느 정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마친 드보르자크는 아홉번째 교향곡을 스케치하기 시작해 5월 말경 전 4악장의 초안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여름 휴가를 이용해 뉴욕에서 2천 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는 아이오와주州의 스필빌Spillville로 향했다. 보헤미아 이민자들의 마을 스필빌은 향수병에 걸려있던 드보르자크에게 고향과 같은 편안함을 주었고, 그는 휴가 중에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한 후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라는 부제를 붙였다. 신세계는 물론 미국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이 교향곡은 미국의 풍물을 묘사하거나 미국에 대한 인상을 그려낸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먼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는 심정이 담겨있는 망향가望鄕歌의 분위기가 짙다. 드보르자크는 흑인 영가나 아메리칸 인디언 음악의 느낌이 묻어나오는 선율을 고국 보헤미아의 민속 선율에 흡수시켜 매혹적이고 이국적이며, 소박하고 따뜻하면서도 강렬하고 웅장한 교향곡을 창조해 낸 것이다.



극적인 선율로 여러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쓰인 바 있다. 대표적으로는 영화 <죠스>, <암살> 등. 출처: 네이버영화


(1악장)

느릿한 저음의 서주序奏에 이어 호른과 목관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후 이내 강렬한 팀파니와 함께 등장하는 주제 선율은 언제 들어도 매혹적이다. 플루트와 오보에를 중심으로 한 제 2주제 선율에서는 흑인 영가의 느낌이 풍겨 나온다. 경쾌함과 목가적 분위기가 대조적으로 되풀이되다가 전 관현악단이 합세해 빠르고 화려한 총주(總奏, tutti)로 시원하게 끝을 맺는다.

(2악장)

라르고의 느린 악장으로, 관악, 팀파니, 현악의 순서로 서주序奏가 전개된 후 나타나는 잉글리시호른의 목가적인 멜로디는 이 교향곡의 백미다. ‘꿈속의 고향’ 멜로디이며, 드보르자크의 제자는 이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Going Home’이라는 흑인 영가 풍의 가곡을 만들기도 했다. 이어 전개되는 다양한 선율들도 아름답고 이채롭다. 끝부분에 이르러 잉글리시호른이 ‘꿈속의 고향’을 재현하자 현악이 이어받아 아름답게 노래한 후, 서주序奏의 주제가 관악, 팀파니, 현악의 순으로 그대로 재현되며 조용히 끝을 맺는다.

(3악장)

2악장과 대조적으로 빠르고 경쾌하다. 스케르초 형식으로 익살스러운 느낌도 든다. 인디언 춤곡 분위기도 나고 보헤미아 농민들의 춤도 연상된다. 중간 부분의 느린 춤곡도 밝고 유쾌하다. 한 소절의 짧고 강렬한 총주(總奏, tutti)의 마무리는 장대하고 찬란한 4악장을 예고하는 듯하다.

(4악장)

2악장과 더불어 가장 많이 알려진 악장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75년 영화 ‘죠스’에서 백상아리 출현 시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배경음악은 4악장 도입부에서 영감을 받은 듯 아주 흡사하다. 이어 나타나는 장대한 주제 선율은 단순한 멜로디이지만 힘차고 찬란하며, 응원가나 광고음악으로도 많이 쓰여 아주 친숙하다. 중간에 클라리넷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지만 이내 흥겨운 행진곡풍의 가락이 다시 울려 퍼진다. 호른이 코다(coda, 종결부)를 예견하듯 느리고 조용히 주제 선율을 재현한 후 전 관현악단이 합세해 노래하는 클라이맥스는 격렬하고 웅장하며 찬란하다. 


‘4대 교향곡’이란 제명으로 베토벤의 ‘운명’, 슈베르트의 ‘미완성’,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그리고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를 거론한 음악 서적을 읽은 적이 있다. 수많은 걸작 교향곡 중에서 몇 개를 골라 순위를 매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 4개를 선정한다면 ‘신세계 교향곡’은 당연히 포함될 듯하다. 45분가량의 대작이지만 언제 들어도 지루할 틈 없이 벅찬 감동을 주는 명곡이다.



♪ 음악 들어 보기


- 드보르자크 신세계교향곡 4악장 도입부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전곡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