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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2-05-06

아빠의 임종의례



드물지만 임종을 지키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가깝게는 자신의 죽음부터 주변과의 이별까지. 수많은 임종을 마주해 온 호스피스의사이자 작가인 박중철 교수의 경험을 빌려본다.



1년 전 일이다. 작년 3월 호스피스 병동 옥상 정원에서 5살, 7살 아이들과 함께 생일 파티를 열었던 30대 남자 환자분이 두 달 후인 5월의 어느 날 끝내 하늘로 떠나셨다. 나는 임종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었을 때 사전에 마지막을 함께 하기로 정한 가족들을 불렀다. 직전까지도 아내와 가족들은 어린 두 아이를 그 자리에 참석시킬지 고민했는데, 결국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갑자기 삶에서 사라진 아빠의 존재에 대해 계속 혼란스러워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정작 아이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앙상한 아빠의 모습보다도 당혹감과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안절부절 작은 변화에도 격앙되는 어른들의 모습에 더 놀라는 듯 보였다. 그리고 결국은 정말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매무새를 정돈한 후 담당 간호사와 함께 임종실로 들어섰다. 엄마 무릎에 앉아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두 아이에게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네가 OO고, 너는 OO구나. 선생님은 병원에서 친해진 아빠 친구야.” 아이들은 내 인사에는 관심 없다는 듯 곧바로 내게 물었다.


“우리 아빠 죽었어요? 큰아이가 먼저 묻자 반사적으로 작은 아이도 앵무새처럼 똑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 마찬가지이다. 다만 아이들의 용기가 더 크기 때문인지 더욱 주저 없이 물어온다.


“선생님은 아빠 친구인데, 아빠가 오늘 하늘나라로 이사가는 날이란다. OO이와 OO도 언젠가 가야 하는 곳이고, 나중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리고 엄마도 가는 곳인데 아빠가 먼저 가 있겠다고 하네. 거기에 가족 모두가 함께 살 멋진 집을 미리 만들어놓겠대.


엄마가 맞아. 아빠가 하늘나라로 이사 가신대.라고 맞장구를 하였고, 나는 다시 이어받았다.


아빠가 그동안 많이 아팠는데, 하늘나라에서는 다시 건강해진대. 그래서 엄마와 OO이, OO이를 위한 집도 튼튼하게 지을 수 있대. 그때까지 아빠를 다시 볼 수는 없지만, 우리 아빠에게 씩씩하게 인사해드리자.




다른 가족분들에게 간단하게 목 인사를 하고 나는 부모님들부터 돌아가며 환자분의 귓가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도록 했다. 할아버지는 말씀을 하시다 격하게 오열하셨고, 그 와중에 장인 되시는 분의 휴대폰 벨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임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 연락을 돌렸고, 그 소식을 접한 모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흔하게 겪는 산만하고 요란한 우리나라의 임종 현실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놀란 아이들의 순서가 되었다. 마지막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는 엄마가 많이 변해버린 아빠의 모습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달래며 아빠 귓가에 '사랑해요'라고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큰아이가 먼저 아빠 옆으로 다가가서 “아빠 사랑해요. 하늘나라 잘 가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5살 둘째 아이는 엄마 다리를 놓지 않고 있어서 엄마가 가슴 품에 안고 대신 인사를 건넸다.


여보 잘 가요. 아이들은 내가 잘 키울게.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요.”


다시 또 장인의 핸드폰 벨이 울렸고, 급히 병실 내 화장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모든 가족의 인사가 끝나고 이제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청진기를 귀에 걸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저씨는 이걸로 아빠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 아빠가 OO와 OO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대. 아저씨가 한번 들어볼게.” 나는 꼼꼼히 환자 분의 가슴을 청진한 후 다시 입을 뗐다.


“아빠가 OO이와 OO이에게 직접 인사도 못 하고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미안하대. 대신 하늘나라에서 꼭 지켜보겠다고 하시네. 그러니 항상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서 아빠 대신 엄마를 잘 지켜 달라고 하셨어. 그러면 아빠가 정말 고맙겠대.”




불빛으로 환자분의 눈을 마지막으로 살핀 다음 차분하게 가족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시계를 꺼내 현재 시각을 확인한 후 임종 선언을 하였다.


“OOO님은 아프실 때도 늘 아이들을 걱정하셨습니다. 뇌로 전이되어 극심한 두통과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잠시 진정 약물을 중단하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아이들에게 영상통화를 하며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던 모습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의연했고, 용감하셨습니다. 안타깝지만 더 이상 고통 없는 곳으로 OOO님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2021년 5월 OO일 오전 OO시 OO분. OOO님께서 고통 없는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내 선언이 끝나자마자 가족들의 억누르고 있던 울먹임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나는 몸을 숙여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후 다시 아내 분께 인사를 했다.


“그동안 병원에서 간병하시며 하루도 제대로 주무신 적이 없는데 너무 고생하셨어요. 그 누구보다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나중에 조금 안정이 될 즈음 저희가 잊지 않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호스피스 기관에는 남겨진 가족들이 우울감이나 죄책감에 시달리진 않는지 확인하고 돌보는 '사별가족 프로그램'이 있다. 사전에 안내와 설명을 해드렸기에 무슨 뜻인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어린 두 아이들을 홀로 돌봐야 하는 젊은, 아니 어린 아내의 삶에는 앞으로 끊임없는 격려와 관심 그리고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이 자리에 함께한 양가 어른들 모두의 연대적 책무이기에 이 임종의례는 작별의 의식이자 남겨진 이들의 책임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임종은 삶에 있어 마지막 순서이지만, 그 이야기를 남기는 것 역시 이별의 아픔을 안고 살아나가는 남은 가족 모두를 위해 중요하다. 때문에, 나는 이 모든 이야기의 목격자로서 동시에 기록자가 되었다. 이야기가 남으면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공간을 만들고 추억의 집을 짓길 바란다.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교수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로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게 되면서 고민의 답을 찾고자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행복의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의료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에 관한 인문학적 사유와 탐구를 강의, 기고 등을 통해 전한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202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