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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9

에덴클래식 #13 가장 낭만적인 클래식



클래식은 그 자체로 이미 ‘낭만’을 닮은 음악 장르다. 그 중에서도 낭만적인 곡을 고르라면? 단연코 바이올린, 그 중에도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이 차갑고 메마른 겨울을 녹여줄 것이다.


멘델스존 :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낭만’, ‘로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설렘이다. 아름답지만 어딘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낭만의 한자어 ‘浪漫’은 ‘물결 낭(浪)’과 ‘흩어질 만(漫)’의 결합어이다. 물결이 흩어지는 것과 ‘낭만’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 한자어 ‘浪漫’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로만’이다. 서양어 ‘roman’을 대체할 외래어 표기로 浪漫을 사용했고,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말 ‘낭만’으로 굳어졌다. 로마제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한 언어는 라틴어였지만 현재의 프랑스나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 영토에서는 라틴어의 방언인 속(俗)라틴어가 사용되었고, 그 언어들을 로망어(혹은 로망스어, Romance language)라고 불렀다. ‘로망roman’은 로망어로 쓰인 연애담이나 영웅적 인물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통속소설을 의미했다.


18세기 중엽, 문학으로부터 시작된 낭만주의Romanticism는 산업혁명, 프랑스대혁명 등 사회, 정치적 커다란 변화의 물결 속에서 발전된 예술사조로, 조화와 이성을 중시한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이성에 눌렸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불안한 현실에 대한 탈출구를 꿈과 공상 속에서 그려내고자 했으며, 그 물결은 미술, 음악 분야로 퍼져나가 19세기 예술 전반을 지배했다.




서양 음악사에서 고전주의 작곡가는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3명,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압축된다. 이 위대한 음악가들에 의해 서양음악의 거의 모든 형식이 완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고전주의 마지막 작곡가인 베토벤은 53세 때,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4악장에 삽입한 ‘합창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았고, 이후 57세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현악사중주들을 작곡했다. 이 후기 현악사중주 중에는 5악장, 6악장, 심지어 중간에 쉬지 않고 계속 연주하는 7악장으로 구성된 사중주도 있다. 고전주의의 형식을 파괴해나갔다. 내용 면에서도 마치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내면의 세계, 미지의 세계를 그리고자 한 듯 난해하고 추상적이다. 당시 청중들은 이 후기 사중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음악가는 "우리는 그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새로운 음악 세계, 낭만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세기 전반에 걸친 낭만주의 음악은 주관적, 개성적이며 공상, 상징, 신비 등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음악에 담아내고자 했다. 음音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고전주의 음악과는 달리 문학적인 소재와 결합해 음악에 이야기를 담아내고, 순수 기악곡인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등에도 형식 파괴, 초절超絶 기교 도입 등을 통해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도 했다. 작곡가들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났고, 각 나라의 민족적 특색을 살리는 등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의 영향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의 국민주의 음악도 이러한 낭만주의 음악의 한 지류에 해당한다. 한편, 독일에서는 슈만, 멘델스존, 브람스 등 비교적 고전적 형식 속에서 베토벤의 음악 세계를 계승하고자 한 음악가들과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감명받아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교향곡은 베토벤에서 끝났다’라는 말과 함께 오페라 작곡가의 길로 들어선 바그너의 음악 세계가 극명하게 갈리기도 했다.



멘델스존의 도시, 독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낭만적’ 혹은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비현실적이거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나타낼 때와 감미롭고 감상적인 사랑을 수식할 때 주로 사용된다. 그런 면에서 낭만주의 대표적인 두 음악가 바그너와 멘델스존의 음악 모두 ‘낭만적’이다. 바그너의 음악은 비현실적이고 영웅적이며 환상적인 반면, 멘델스존의 음악은 부드럽고 감미로우며 감상적이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다. 낭만적이라는 수식어는 점차 비현실적이지만 감미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로만 굳어져 바그너의 음악을 낭만적이라고 하기가 망설여진다. 반면, 멘델스존의 음악은 철저히 낭만적이다. 특히 그의 최고 걸작인 바이올린협주곡을 들을 때면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르고 아름다운 꿈속에 머물러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부유한 은행가이자 예술과 학문을 사랑한 부친, 부드럽고 교양있는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Bartholdy(1809~1847)은 좋은 환경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림과 문학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으나 9세부터 작곡을 시작해 인정을 받자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26세(1835년)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부임하여 이 악단을 유럽 최고의 관현악단으로 만들면서 작곡가로서뿐 아니라 지휘자로서의 명성도 크게 얻었다. 28세(1837년)에 결혼해 가정생활도 행복했고 음악가로서도 최고의 영예를 누렸지만 누적된 과로로 인한 체력 쇠퇴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짧은 생에도 5곡의 교향곡, 4곡의 협주곡과 무언가無言歌를 비롯한 다수의 피아노 독주곡, 가곡 등 100여 곡의 작품을 남겼다. 멘델스존의 음악에는 평탄하고 부유했던 그의 삶이 반영된 듯, 고뇌와 슬픔, 격정 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이지만 고전주의 형식을 벗어나지 않았고, 환상적이거나 상징적인 면도 찾아보기 어렵다. 온화한 성격에 여행과 그림을 좋아한 멘델스존의 음악은 담백하고 경쾌하며, 회화적이고 감상적이다. 3번 교향곡 ‘스코틀랜드’, 4번 교향곡 ‘이탈리아’, ‘핑갈의 동굴’ 서곡을 듣다 보면 저절로 미지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려지고, 49곡의 무언가는 젊은 시절의 행복했던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바이올린협주곡을 빼놓고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얘기할 수 없다.




29세(1838년)에 구상을 했지만 6년이 지난 후에야 완성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E단조 바이올린협주곡’은 멘델스존의 최고 걸작일 뿐 아니라 고금의 모든 바이올린협주곡 중 손꼽히는 명곡이다. 흔히 베토벤,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과 더불어 3대 걸작으로 불릴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낭만적인 정서와 형식미가 조화를 이루어 화려하나 품위를 잃지 않고, 감미로우면서도 깊이가 있고 우아하다. 베토벤의 협주곡이 기골이 장대하고 잘생긴 기사의 모습이라면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품위 있고 우아하며 부드러운 중년 여성을 연상케 한다. 3악장으로 명확히 구분돼 있지만, 중간에 쉼 없이 끝까지 연주한다. 각 악장의 유기적인 연결을 단절시키고 싶지 않은 작곡가의 의도일 듯하다. 불과 2~3초의 짧은 현악기군의 부드러운 속삭임을 뒤로 하고 나타나는 바이올린 독주의 주제 선율은 경쾌하나 우수를 머금은 듯 매혹적이라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정열적으로 찬란하게 1악장이 끝나지만 저음의 목관악기 바순 독주가 2악장으로 쉼없이 연결시킨다. 바이올린 독주로 차분하게 전개되는 2악장의 주제 선율은 우아하고 지극히 서정적이다. 관현악단과 바이올린 독주의 대화는 사랑하는 남녀가 부드럽게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감미롭다. 조용히 2악장을 끝내지만 아쉬운 듯 쉼 없이 바이올린 독주가 차분하게 3악장으로 이끈다. 관악기와 팀파니가 동원된 큰 울림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악장은 경쾌하고 기교적이며 찬란하다. 화려한 코다(끝맺음)가 시작되면 벌써 아쉽다. 30분이라는 긴 연주임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베토벤 협주곡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모든 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음반을 남겼기에 셀 수 없이 많은 녹음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고르기는 정말 쉽지 않다. 1970~80년대 최고의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로 많은 녹음을 남긴 정경화의 멘델스존도 좋고, 그녀 동생인 정명훈이 지휘한 동영상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 음악 들어보기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Julia Fischer (바이올린), 정명훈 (지휘)



-정경화 (바이올린), Georg Solti (지휘)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