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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0

당신을 이해하기 위한 내 안의 진심에 대하여-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아무리 가까워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타인을 두고 혹자는 이해하려 말고 그저 받아들이라 한다. 그러나 이해없이 쉬이 인정할 수 있을까. 하물며 사랑 속에 떠오른 물음표는 더욱 꼿꼿하고 드세다. 이달의 영화는 내면의 숨겨진 열쇠를 찾아간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머릿속에 피어오른 복잡한 생각의 실타래들이 정신없이 꼬이게 될 것을 직감했다. 영화는 인물들의 속 깊은 대화로 서사를 촘촘히 채워나가면서도 반대로 경계에 놓인 말, 언어, 역할극, 그리고 상실과 죄책감 같은 소재가 명쾌하게 엮이지 않는 설긴 관계를 이어나가기 때문에 러닝타임 내내 많은 에너지를 써야했다. 여러모로 고민하던 중, 가장 직설적인 방식으로 내 마음 속 오고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어졌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세계 속에 존재했던 언어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교감으로 반짝이는 순간,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진심’이라는 이름이다.



영화 <드라이브마이카>의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모티브가 된 소설과 희곡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각본가로 활동 중인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는 딸을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는 사이 좋은 부부이다. 어느 날 가후쿠는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고 얼마 안 가 그녀는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2년 후, 연극 <바냐 아저씨> 연출을 맡은 가후쿠는 전속 운전기사인 미사키(미우라 토코)를 만나게 되고 그녀 역시 가족과 관련한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가후쿠는 아내의 외도상대였던 젊은 배우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에게 바냐 역할을 맡기며 다국적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아내의 불륜상대와 술집에서 대화를 나눈다거나, 여성 운전기사를 둔다는 설정은 고스란히 하루키의 원작에서 가져왔다. 감독은 20대 시절 하루키의 작품을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적 소재로써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하루키의 또 다른 단편 <셰에라자드>에 등장하는 칠성장어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극중 오토가 가후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좀 더 깊게 다가가기 위해서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곱씹어보는 것도 좋다. 자신이 모시는 교수를 위해 평생을 살아왔지만 교수가 가진 양면성을 뒤늦게 알게 된 후 절망과 후회를 느끼는 바냐의 이야기 이다. 영화 속 가후쿠는 주인공 바냐 역할을 주로 맡은 배우인 동시에 다국적 언어로 이루어진 <바냐 아저씨>의 연출가로도 등장한다. 결국 가후쿠는 바냐와 비슷한 결을 지닌 채 후회와 극복을 공유하는 인물인 것이다.



주인공 가후쿠는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관객에게 모호함을 준다. 출처: 네이버영화


우리는 과연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가후쿠의 감정이 쉽게 읽히지 않아 그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그가 쉽게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설정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오히려 철저하게 감정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가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는 왜 자신의 감정을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깊숙한 심연으로 밀어 넣은 걸까.

바냐와 나이도 비슷하지 않은 젊은 다카츠키를 바냐 역할로 캐스팅 한 후 가후쿠는 말한다. 더 이상 자신은 바냐를 연기할 수 없다고. 바냐를 연기하다보면 그 역할에 함몰되어 자신을 잃어버린다고. 이 말은 바냐가 가진 고민과 내적 갈등이 연기가 아닌 가후쿠의 현재 심경과도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괴로워서 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가후쿠가 가진 깊은 괴로움은 떠나보내야 했던 딸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남자를 필요로 했던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겉으로는 원만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이 부부의 내면에는 서로 다른 어둠이 침범해있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는 잘 짜인 대본처럼 표면적인 언어들뿐이다. 이것은 마치 가후쿠가 운전을 할 때마다 듣는 아내의 녹음테이프와 같다. 아내는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테이프에 녹음해주고, 가후쿠는 운전할 때마다 테이프를 틀어 비어있는 바냐의 대사 부분을 연기한다. 이는 잘 짜여 있는 희곡의 대사이지만 정답이 이미 있는, 기능적으로 오고 가는 말이 되어 또 하나의 연극 무대인 자동차 내부를 공명한다. 그런 반면 아내는 내면과 무의식을 끌어올려 진실 된 생각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일은 가후쿠와의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를 잃고 힘겨운 고비를 겪은 아내는 어느 날 부터인가 잠자리 도중 어떤 이야기들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글로 쓰게 되면서 등단 작가가 된다. 이런 과정은 상실과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만든 그녀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녀가 잠자리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가후쿠 본인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이다. 그는 그녀의 본심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심도 회피하기 시작한다. 단지 그녀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죄책감만 선명하게 지니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이 연출하는 연극의 특성처럼 영화는 저마다의 내면이 지닌 다양성을 담고 있다. 출처: 네이버영화


때론 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소통되지 않는 우리 각자의 언어는 가후쿠가 연출하고 있는 연극과도 이어진다. 독특한 점은 가후쿠가 연출하는 <바냐 아저씨>는 다국적 배우들 각자의 모국어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어, 일본어, 타갈로그어, 중국어 게다가 수어까지. 이 희곡의 내용을 알고 있는 배우들에게 표면적 대사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정작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들은 진심어린 연기를 끌어내기에 부족함을 느낀다.

“때론 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소냐 역을 맡은 배우 유나의 말이다. 유나는 수어를 쓰는 인물이다. 유나의 언어는 그녀의 남편 이외에 극 중 알아듣는 이가 없다. 그러나 유나는 언어라는 수단을 넘어 진심어린 소통을 경험한 인물이다. 이는 극 중 야외 연기 연습 도중 발생하는데 연기를 뛰어넘어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상대방을 깊게 이해하는 반짝이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는 상대 배우도 마찬가지이다. 가후쿠 역시 “방금 둘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다”며 정확히 그 순간을 지적한다. 이는 배우가 배역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내면 깊은 곳까지 다가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이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와도 같다. 결국 가후쿠는 자신이 다시 바냐를 연기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처음으로 솔직한 마음을 꺼내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출처: 네이버영화


지우는 것이 아닌 쓸어안는 상흔이라는 것

“가후쿠씨는 오토씨의 그 모든 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가요?”

미사키에게 상흔이 된 그녀의 무너진 옛 집터. 이곳을 함께 바라보던 가후쿠는 미사키의 말에 처음으로 흐느낀다. 자신은 솔직하지 못했다고, 두려워서 진실을 회피한 것이라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사과하고 싶다고. 그리고 비로소 아내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각오한다. 이 모든 상처를 끌어안고 묵묵히 살아갈거라고. 이런 가후쿠의 선택은 드라마틱한 치유가 아닌 부둥켜안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수많은 상흔을 기억하게 한다. 마치 미사키 뺨에 남은 상처처럼 말이다. 흐려질 수는 있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 가후쿠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을 하고 있다. 소통 불능과 부조리극의 전형인 이 작품으로 시작해 영화는 <바냐 아저씨>의 엔딩을 통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소냐는 바냐의 뒤에서 어깨를 감싸며 수어로 이야기한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딘 후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 받았었다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때가 오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서로 마주 보지 않은 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의 대화. 어느덧 바냐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한 후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아내의 마음을 고스란히 쓸어안게 된 가후쿠의 모습 그 자체가 되어있다.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