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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0

진정한 ‘아버지 되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가족 안에서 존재와 역할은 이따금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당연하게 살아 가지만, 어느 누구도 미리 배우거나, 더 유리하게 태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마주할 수밖에 없을 고민들. 이번 영화를 통해 가깝지만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함께 꺼내볼 수 있길 바란다.


영화 속 이야기 그리고 모티브가 된 사건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완성 직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작은 에피소드를 언급한다. 어느 날 감독이 집을 나서는데 당시 5살이던 딸이 마치 손님에게 이야기하듯 “다음에 또 오세요”라며 예의바르게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당시 받은 충격이 컸던 감독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딸에게 타인보다 더 먼 존재가 된 것 같았던 감독은 혈연이라면 당연하게 부여되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핏줄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있는가가 진정한 가족의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라는 고민을 가지고 시나리오 단계에 착수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진정한 아버지 되기에서 더 나아가 진정한 부모와 자녀 그리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깊은 사유의 시선을 던진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공식 포스터. 출처: 네이버영화


성공적인 비즈니스맨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자가 아닌, 병원의 실수로 뒤바뀐 아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바뀐 다른 가정의 부모와 친 아들을 보는 료타의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두 가정은 천천히 아이들의 생활을 바꾸며 적응을 시키려하고 료타는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아들과의 관계를 깊이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모티브가 된 것은 위에서 언급한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과 더불어, 1960년대 일본 베이비붐 시대에 아이가 바뀌었던 당시 사건자료들과 그것을 소재로 다룬 소설들이 있다. 실제로 영화 개봉과도 맞물려 자신보다 13초 뒤에 태어난 아기와 뒤바뀌어 60년간 서로 다른 삶을 산 이들의 이야기가 보도되며 일본열도를 떠들썩하게 한 에피소드도 있다.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뒤바뀐 아이의 부모가 낳은 자녀와 기른 자녀 중 어떤 아이를 택할 것인가에 주목하는 듯 하지만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 감독은 한 사건을 통해 비로소 마주보게 되는 주인공의 내적 고민을 통해 한 남자가 아버지로 성장해 가는 '성장 드라마'로 완성한다.


‘가족’에 대한 감독의 일상적인 접근

고레에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간애를 배운 감독이다. 그러다보니 그가 바라본 인간의 삶이 가지고 있는 가치들은 그의 영화에서 친숙한 일상의 모습으로 표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욕실에서 뛰어 나온다거나 엄마가 물기를 말려주는, 혹은 가족끼리 도란도란 얘기 하면서 식사 하는 장면 등은 그의 영화에서 가장 자주, 또 가장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는 우리의 삶이 어떤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기보다 소소한 일상의 반복으로 비로소 완성된다고 보는 감독의 세계관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감독의 이런 다큐적인 경험이 현재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바로 '가족'과 '가족사'라는 소재일터. 엄마가 떠난 네 남매의 이야기 <아무도 모른다>, 가족구성원의 죽음과 남겨진 가족을 다룬 <환상의 빛>과<걸어도 걸어도>, 분리된 가족의 이야기인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등이 이를 보여준다. 감독은 다양한 가족사를 겪으며 성장했고 그 때 그 때 자신의 심정에 맞는 가족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다고 한다. 이것은 감독 개인의 이야기가 영화에 상당수 투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걸어도 걸어도>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점에서 아들의 관점으로 만든 영화이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자신의 딸의 관점에서 담은 이야기이다. 극중 바쁜 료타를 꾸짖으며 "애들한테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 라고 말하는 상대편 부모 유다이(릴리 프랭키)의 대사도 고레에다 감독의 아내가 감독에게 직접 했던 말이라고 한다.


영화는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료타의 변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혈연인가, 함께 보낸 시간인가’ 라는 감독의 고민은 이 작품의 초기 아이디어일 뿐, 영화는 둘 중 하나를 결정하는 선택의 문제를 다루는 대신 부모가 된다는 것, 특히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칫 자극적 신파형식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철저히 배제하며 주인공의 내적 변화를 조용히 따라간다. 감독은 돈은 잘 벌지만 늘 바쁘고 완벽함만을 추구하려는 아버지 료타 앞에, 가난해도 항상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상대편 아버지인 유다이를 등장시키며 료타의 변화를 꾀한다. 친 아들을 찾아오면 된다고 생각한 료타이지만 생각만큼 다시 가족이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항상 남들에게 뒤쳐져서 걱정하던 케이타에게 느낀 기른 정을 문득문득 느끼기도 한다. 서로 몇 주씩 아이들을 바꿔가면서 기르는 과정 속에 료타는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케이타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어릴 적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빗장도 함께 서서히 풀어간다. 영화의 엔딩, 료타는 그동안 케이타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케이타에게 사과하기 위해 유다이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자신을 잊으려고 한 료타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이 폭발한 케이타는 따라오는 료타를 피해 도망간다. 료타와 케이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걷는데 이 거리는 둘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이 거리를 줄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료타의 진심어린 사과와 사랑의 표현이다. 가족 간에 미안하다는 말은 결코 쉽게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지만, 실상 가장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영화는 마치 아이가 자라듯, 부모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과정을 그렸다.  출처: 네이버영화


“미안해”, “케이타가 아빠를 위해 카네이션을 접어줬지?”, “정말 미안해”,“케이타가 아빠 사진도 찍어줬지?”, “아빠는 케이타가 너무 보고 싶었어” 얼만큼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어느 덧 둘은 나란히 걸으며 서로를 바라본다. 항상 케이타 머리 위에서 내려만 보던 엄격한 아빠 료타는 키를 낮춰 처음으로 케이타의 얼굴을 눈높이에서 마주본다. 극중 끊임없이 등장하는 전봇대의 전선들과 기차들, 전파상에서 시작해 온 마을을 비추는 엔딩 장면은 결코 끊을 수 없이 이어져있는 가족간의 관계를 상징함과 동시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이란 이름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제목인 '아버지가 된다' 는 '이미 주어져있음'이 아닌 '되어 감'을 내포한 제목이다.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11월을 배경으로 시작해 다음 해 7, 8월까지 대략 10달의 시간이 지났음을 보여준다. 10달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태의 기간이다.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한 남자의 '아버지가 되는 시간'으로 설정된 것은 아닐까.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