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의031-645-9191

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1-06-04

인간다운 삶, 존엄한 죽음



원래 상조란 단어는 ‘서로서로 돕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사회 속 개인과 공동체, 결코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 더 존엄한 삶과 안식을 위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상조가 아닐까. 진정한 추모와 애도에 중심을 둔 바람직한 장례를 위해 앞장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이야기.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추모플래너 전승욱 목사가 전해왔다.


나는 서울과 통영을 오가며 교회 전임목회자로 13년을 살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교회가 나아갈 새로운 전환점이 절실히 필요했다. 교우들이 분투하며 살아가는 현장에서 선교적 교회를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두려웠지만, 오랜 고민 끝에 큰 애정을 쏟았던 교회를 사임하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현장 사역할 만한 곳을 찾았고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인연이 닿았다. 교회와 협동조합은 다르면서도 닮은 구석이 많았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이자 운영자였고,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관심 많은 조합원들이 협동의 경제공동체를 구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모인 곳이었다. 동시에,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상조시장에서 매우 독특한 지위와 역할을 지닌 단체였다. 2010년 혼탁하고 부패한 상조시장을 정화하고자 창립했고, 지난 10여 년 직거래 공동구매와 맞춤화로 비용 부담을 줄이는 투명하고 정직한 장례를 표방해 1,500여 건의 장례서비스를 단 한 건의 ‘클레임’ 없이 제공해 왔다. 또한, 민주화와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사회장을 치렀고, 돈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취약계층 장례를 지원해 왔다. 그동안 전국에 조합원 3,500명, 법인조합 9개로 이루어진 연합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오랫동안 안고 온 고민들을 위해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뒷돈을 주고받는 관행과 비용문제만 해결되면 좋은 장례식이 되는 것일까, 가난으로 인해 장례조차 어려워야만 하는 걸까. 병원 장례식장과 상조회사 중심의 3일장 문화를 좀 더 간소하게 바꿀 수는 없을까…. 개성 없는 장례는 그만하고 싶었다. 답답한 병원 장례식장을 벗어나, 고인의 삶을 기록한 영상이 돌아가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추억담이 넘치는 그런 장례를 해보고 싶었다. 조화 개수와 조문객 수가 아닌, 장례의 본질인 추모와 애도를 중심으로. 그렇게 추모 중심의 작고 아름다운 이별 ‘채비’가 탄생했다.


‘채비 장례’를 치른 유족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나 같이 고인에게 충분히 이별을 고하며, 위로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깊은 감동을 주는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한 가족은 사랑하는 고령의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햇살 같은 미소로 자녀들을 따뜻하게 대한 분이었다. 상주인 아들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 대표였다. 일반 장례식이었다면 거액의 부의금과 근조화를 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간단히 그것을 사양했다.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의 생애를 기록했고, 사진을 추렸고, 유품을 챙겼다. 추모식장 한쪽에 마련된 흰 테이블에 아버지의 유품을 가지런히 전시했다. 유품에는 통장과 일기장, 비닐 코팅한 자격증이 많았다. 장중한 선율이 흐르는 추모장례식장은 엄숙하면서도 밝았다. 조문객들은 낯선 풍경에 잠시 어리둥절하지만, 조문 후 유품을 둘러보고, ‘조문보(고인 약전)’를 읽고, 고인을 기리며 ‘메모리얼포스트(엽서)’를 썼다. 엽서는 입관 때 고인의 품에 넣어드렸다. 늦은 저녁 추모식이 진행되었다. 고인의 사진으로 만든 영상이 돌고, 장성한 손주들이 나와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편지로 작별을 고하고, 아들과 딸은 생전에 주신 모든 사랑에 감사해하며 울먹였다. 그 모습에 나도 눈시울이 불거졌다.




채비장례 추모 현장에서는 현실의 죽음이 더 친근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스쳐 가듯 지나쳤던 죽은 이들의 인생이 하나하나 찬란한 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현장에서 만나는 죽음의 어두운 현실과 천국의 아름다움의 간극을 부정할 수 없었는데, 이제 이 간극을 줄이고 삶과 죽음이 잘 어우러지게 할 때 삶도 신앙도 더 건강해질 수 있음을 안다. 이런 상태를 ‘좋은 죽음(well-dying)'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첫째, 죽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 내 장례가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는지, 내가 간 후에 무엇이 남기를 바라는지 미리 준비해 놓는다면 남은 가족과 자손들에게 큰 용기를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합에서 마련해 놓은 ‘채비노트’가 있다. 마지막을 잘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 빼곡히 들어 있는 노트로, 천천히 작성하고 가족들과도 미리 공유한다면 준비하는 좋은 죽음이 될 것이다. 둘째, 좋은 죽음은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 죽는 것이다. 요즘 고독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비마이너>라는 인터넷매체에는 매월 무연고로 사망한 이들의 명단과 사망 사유가 올라온다. 출생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홀로 생존하기 어렵듯,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추모플래너’로 일하면서 신앙의 가치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다. 짧은 시간이나마 교회 밖에서 신앙의 가치들을 실천하고 싶었던 바람을 하나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이다. 바라건대, 돌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비쳤으면 한다. ‘인간다운 삶, 존엄한 죽음’이라는 조합의 사명을 되뇌며 오늘도 어느 애틋한 가족의 추모식을 준비한다. 

전승욱 목사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추모플래너

서울 길음동 새생명교회 교구목사로 섬기던 중에 한신대 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를 전공하고,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상포계 부장과 추모플래너를 겸직하게 됐다. 상조시장의 투명성을 위해 힘쓰고 있는 해당 협동조합에서 애도프로그램과 추모식 기획 및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