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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1-01-01

최고의 덕담



크리스천에게 새해 최고의 덕담은 무엇일까? 어느 CF의 카피라이트로 쓰여 인기를 끈 ‘부자 되세요’? 팬데믹 상황을 염두에 둔 ‘건강하세요’? 지난 2005~2006년에 이어 올해 다시 한번 한국기독교윤리학회장을 맡은 문시영 교수는 우리에게 조금 다른 시각을 선사한다.



바야흐로 덕담(德談)의 시즌이다.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어김없이 새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악담과 험담을 늘어놓기보다는 덕담을 나누는 것이 훨씬 정겹고 좋아 보인다. 덕담이라는 단어에 사용된 ‘덕’(德)의 뜻을 생각하면, ‘듣기 좋은 소리’나 해주자는 것이 아니라 덕스러움을 소통하자는 취지일 듯싶다. 그렇게 보면, 덕담 주고받기를 권하는 아시아 전통에서는 ‘부자 되세요’처럼 잘되고 번영하기를 빌어주는 것이 덕스러움이겠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최근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현대 윤리학에서 덕을 의미하는 단어 ‘virtue’가 새롭게 조망 받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덕 윤리’(virtue ethics)는 한국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 덕은 동양의 전통사상에 뿌리를 둔 관념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은 그동안 아시아적 덕 전통에 대한 권태에서 벗어나 시민의 윤리로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덕이 마치 사회의 발전과 개선을 막는 낡은 개념처럼 인식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덕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오늘날 윤리학에서 말하는 덕은 이것과 사뭇 다른데, 현대사회에서 상대주의가 득세하고 도덕이 와해되는 원인을 공동체와 덕의 상실 때문이라고 진단한 윤리학자 맥킨타이어A. MacIntyre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적 관점과 덕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가 공동체를 강조한 것은 덕의 함양이 개인의 노력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고 할 때 ‘존재’란 ‘인격능력’을 뜻한다. 의무론적 윤리가 행위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덕 윤리에서는 인격능력으로서의 덕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풀어낸 기독교윤리학자가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다. 그는 덕 윤리가 말하는 ‘공동체’를 ‘교회’로, 인격능력으로서의 ‘덕’을 ‘복음의 증인됨’이라고 풀이한다. 하우어워스가 보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덕은 철학자들의 그것과 다르다. 복음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덕스러움이요 그리스도인됨(being Christian)의 본질이다. 복음의 증인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다운 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됨(being church)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교회는 복음의 공동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육성해야 한다. 하우어워스의 용어를 빌자면, ‘예수 내러티브’ 즉 복음에 충실한 제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덕의 기독교적 본질이며, 교회는 복음의 증인됨을 위해 일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덕이 되는 말, 덕담으로 소통한다는 뜻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최고의 덕담은 아마도 이것 아닐까 싶다.




‘복음의 증인 됩시다’


하우어워스의 기독교 덕 윤리에서 본다면 그리스도인의 덕은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잘되고 번영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적 심리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바라기는, 두려움과 어두움의 시간이 속히 지나가면 좋겠다. 주께서 그렇게 인도해주시기를 소망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번영이 곧 신앙의 최고가치인 것은 아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분명 번영이 ‘아니다.’ 오히려, 복음의 사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덕이요 가치관이다.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새해는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언택트 뉴노멀 등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팬데믹의 종식은 불확실하지만 ‘가나안 교인’(거꾸로 읽으면...)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만큼은 확실해 보이는 이때, 어떤 덕담을 해야 할까? 복음 안에서 새 세대를 살아가며 부활소망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에덴낙원의 가족들에게, 새해 최고의 덕담을 전하고 싶다. ‘복음의 증인 되세요’

문시영 남서울대 교목실장, 한국기독교윤리학회장

숭실대 철학과와 대학원 석·박사과정을 마친 후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를 연구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에모리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비지팅 스칼라로 연구했으며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장, 한국기독교학회 연구윤리위원장을 역임했고 새세대윤리연구소(NICE)소장이며, 2021년 한국기독교윤리학회장이다. 현재 남서울대 교목실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