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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컬처
2020-11-11

진심 어린 사과, 회복의 시작, <썬샤인 패밀리>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의 웃음은 때로 ‘웃음’이 아니다. 힘겹게 끄집어낸 쓰디쓴 마음. 이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 때, 우리는 웃음을 경유한다. 웃음이야말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내어 담을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공감과 표현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코미디 영화들이 그렇다. 온몸을 던져 우스꽝스러운 웃음을 자아내는 슬랩스틱 코미디 일지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픔과 해학이 있다. 새삼 코미디를 통해 희비극을 관통한 찰리 채플린이 이 순간 더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썬샤인 패밀리>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런데 여기 다른 맥락으로 좀 이상한 코미디 영화가 하나 있다. 스웨덴 가족 코미디 <썬샤인 패밀리>이다. 내용만 보면 막장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왠지 그 형식이 익숙하지 않다. 흔히 막장이라고 하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개연성과 구렁텅이 엔딩이 존재하고, 이 상황에 몸을 실은 관객들은 롤러코스터 타듯 이 황당한 감정을 극렬하게 경험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썬샤인 패밀리>는 시종일관 조용하다 못해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하다. 이렇게도 차분하고 조용한 막장이라니. <썬샤인 패밀리>가 그리는 조용하지만 제대로 뒤통수 가격하는 지점은 과연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지 톺아보고 싶어졌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연출한 플렉스 할그렌 감독은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으며 북유럽식 뼈 있는 농담을 던진다. 또한 그는 직접 주인공 중 한 명인 알렉스 역을 맡아 열연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북유럽 코미디가 그리는 ‘리얼’ 현실
<썬샤인 패밀리>는 크리스마스에 시작해 그다음 해 크리스마스로 끝나는 작은 소극이다. 오랜 친구인 세 커플과 이들이 생활전선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담는다. 이 코미디가 가족을 그리는 방식은 다이내믹하다. 시작부터 알렉스와 안나 커플의 이혼 통보로 시작한다. 겉으로는 이 둘의 헤어짐과 재결합 그리고 그들을 다시 합치게 하고픈 친구들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제 다른 커플들 모두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오베와 아네타 커플은 정자를 기증받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고, 프레드와 미칸 커플은 말썽쟁이 아들과 자유분방한 아버지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잠시 북유럽 코미디의 정서를 생각해보면 다층적인 사회적 고민을 소소한 실소로 녹여낸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경우, 주인공 알란의 삶을 통해 스페인 내전, 미국의 원폭실험, 냉전 시대와 이중 스파이, 베를린 장벽 붕괴 등 1990년대 무거운 현대사가 코미디를 입고 등장한다. <오베라는 남자>, <유 더 리빙> 역시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손꼽히는 북유럽의 모순을 건드리거나, 서구사회가 가진 맹점들을 지적한다. 이 영화들은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방식이기 때문에 코미디이지만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조기 퇴직, 연금 수급 문제, 계약사기 등 삶에 직면한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는 가족관계 또한 북유럽 코미디 영화의 단골 소재다. 더불어 기독교적 나눔과 돌봄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북유럽 코미디는 ‘함께 함’이라는 공동체 의식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는 각자의 문제와 고민을 안고 사는 세 커플 이야기가 등장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가족과 세대. 그 위기에 대해
<썬샤인 패밀리>의 가족들은 시작부터 당황스럽게 한다. 영화 초반, 알렉스와 안나는 서로를 배려하며 다정하게 크리스마스 파티로 향한다. 이 모습을 보며 어느 누구도 이 둘을 헤어진 부부로 생각하지 못한다. 이는 극중 친구들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평온할 뿐 내면은 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임을 강조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다. 연출된 장면은 또 있다. 알렉스가 진심을 이야기할 때면 갑자기 큰 기계 소리를 삽입해 그의 말이 들리지 않게 처리한다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생뚱맞은 인물이 치고 들어오는 일명 ‘스위치 개그’가 그러하다. 이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결코 편히 웃을 수만은 없는 지점이다.


아들 프레드(가운데)와 아버지 마오리츠(가장 왼쪽) 사이의 세대갈등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축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가족관계의 위기와 더불어 좁아지지 않는 세대 간의 문제 또한 건드린다. 젊었을 적 꿈을 찾기 위해 가족을 떠난 경험이 있는 마오리츠는 아들 프레드와 아직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잘나가는 은행원 프레드는 최근 아버지에게 또 다른 이유로 화가 나 있다. 자기 아들 빅토르에게 은행원을 자본주의의 노예라며 비판하고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를 소개해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오리츠는 68혁명을 겪은 세대로 등장한다. 우리나라로는 58년 세대로 비유될 수 있고 히피, 자유주의 사상 등의 의미를 가진 캐릭터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가족은 돌보지 못한 젊은 날의 선택은 아들 프레드에게 큰 상처를 남긴 듯하다. 결국 프레드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인 보수적 은행원이 되어 있다. 그런데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한 아들 세대에 또다시 반기를 드는 이가 있으니, 돈만 중요시하는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의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손자 빅토르이다. 이 대책 없는 가족들. 과연 어찌 될까?

회복을 위한 첫발

안나는 알렉스(사진)에게 “당신과 나는 샐러드드레싱 같아서 계속 휘저어주지 않으면 층이 생겨”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관계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출처: 네이버 영화

가족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을 끊기 위한 노력은 놀랍게도 늙은 혁명가 마오리츠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한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아들 프레드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했을 뿐이다. 자신의 자아 찾기로 인해 짐을 지우게 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프레드를 위해 파티에 참여하겠다고. 비록 마오리츠 본인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미 우리는 모두 화합과 회복의 방법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반성이 있어야 용서가 있고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또한 서로의 실수를 품어내고 힘겹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함을. 하지만 절대 쉽지만은 않기에 오늘도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과 나는 샐러드드레싱 같아서 계속 휘저어주지 않으면 층이 생겨.” 섞이지 않는 서로의 관계를 빚 댄 안나의 푸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방법은 하나다. 계속 휘저으면 된다.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더라고 그저 열심히 휘저어보는 것이다. 어차피 엉클어진 인간관계가 흠도 없이 완벽하게 합일될 수 없는 노릇일 테니, 일단 휘저어나 보자.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디서나 은근슬쩍 잘 어울릴 근사한 드레싱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