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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8

이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㉕

㉕ 티치아노, 지롤라모 바르바리고의 초상, 런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London)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진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90-1576).


동시대인들은 그를 ‘일 디비노(Il Divino, 신적인 화가)’라 불렀고, 작은 별들 사이의 태양과 같은 화가라고 입을 모아 찬미했다.



티치아노의 자화상(1567)    출처 : wikipedia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베 디 카도레’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베네치아로 유학을 갔다. 당시 가장 유명한 조반니 벨리니 공방에서 수학했고, 젊은 시절 천재화가 조르조네(Giorgione, 1478-1510)와 함께 작업하며 덩달아 그의 이름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조르조네는 32세에 일찍 사망하고 티치아노가 드디어 베네치아 화단 최정상에 올라섰다.


조르조네(Giorgione, 1478-1510) 출처 : wikipedia


티치아노가 대단했던 것은 그림을 잘 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피렌체와 로마의 화가들이 정확한 선과 해부학적 구조를 강조하는 ‘데생(Disegno)’을 중시했다면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빛과 대기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티치아노는 윤곽선보다 붉은색과 푸른색, 금빛과 어두운 그림자들을 잘 활용하여 인물의 피부와 옷, 공기까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 속 사람들은 마치 말을 할 것처럼 생생한 존재로 보인다. 그의 명성은 곧 베네치아를 넘어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다. 



성모 승천(1516-1518)    출처 : wikipedia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Carlo V, 1500-1558), 교황 바오로 3세(Paulus PP. III, 1534-1549), 스페인의 펠리페 2세(Felipe II de Habsburgo, 1527-1598) 같은 최고 권력자들이 티치아노 팬클럽의 회장단이었다. 카를 5세는 자신을 그리던 티치아노가 떨어뜨린 붓을 허리를 굽혀 직접 주워 주었다. 낯선 광경에 의아해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는 티치아노잖아?"라고 할 정도로 그를 극진히 예우했다고 한다.



카를 5세의 기마 초상화(1548)    출처 : wikipedia


티치아노는 오랜 세월 동안 붓을 놓지 않았고, 말년에는 오히려 붓질이 더 거칠고 대담해졌다. 젊은 화가들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화풍을 바꿔 나간 것이다.


80세를 넘어서도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계속 탐구했다는 이 화가는 르네상스 삼총사라 불리는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와 더불어 르네상스 사(4)총사 중 한 명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가 그렇게 부른다는 뜻이다)


지롤라모 바르바리고의 초상


지금도 필자 책상 위를 장식하는 그림으로 이사를 다녀도 항상 벽면에 붙여두는 그림들 중 하나이다.


티치아노가 그린 이 젊은 남자의 초상화는 오랫동안 도대체 ‘누구의 초상화인가’라는 미술사의 작은 미스터리였다. 1510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한쪽 팔을 비스듬히 앞으로 내밀어 화려하게 누빈 소매를 보여주는 독특한 포즈 때문에 오랫동안 ‘푸른 누빈 소매의 남자(Man with a Quilted Sleev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누비 소매의 남자(1509)    출처 :  wikipedia


그런데 정작 신기하게도 그림 속 남자의 이름은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필자 역시 이 그림을 처음 런던에서 보고 매력에 푹 빠졌고 나름 혼자 생각으로 이 모델은 티치아노 자신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그렇게 확정적으로 이야기를 했었다. 아마 수많은 학생들이 아직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때 가장 유명했던 주인공 후보는 이탈리아의 대 문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 1474-1533)였다. 17세기 이후 이 그림은 아리오스토의 초상화로 알려졌고, 암스테르담에서 만들어진 판화에도 아리오스토의 이름으로 제작되었다.



아리오스토(1640년경)    출처 : britishmuseum


그러다 점점 ‘혹시 티치아노 자신의 젊은 시절 자화상이 아닐까’라는 주장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젊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당당한 자세, 그리고 당시로서는 매우 아주 세련된 옷차림 때문이었다. 


후대의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와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 1599-1641)같은 화가들이 자신들의 그림에 이 독특한 포즈를 참고했다는 이야기들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미스터리를 풀어낸 단서는 뜻밖에도 아주 오래된 기록 하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1568년 ‘예술가 열전’에서 티치아노가 그린 친구이자 바르 바리고 가문의 신사 초상화에 대해 기록했다. 은빛 새틴 소매와 수염의 털 한 올 한 올까지 정교하게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바사리가 말한 ‘바르 바리고 가문의 신사’라는 단서를 가지고 미술사 학자들은 당시 베네치아의 기록과 인물들의 나이를 하나씩 대조했다.



조르조 바사리의 자화상(1571-1574)    출처 : wikipedia


가장 유력한 인물로 지롤라모 디 안드레아 바르바리고(Gerolamo di Andrea Barbarigo, 1479-1531)가 떠올랐다.


그는 베네치아 명문가의 후손이었고, 1509년에는 베네치아의 핵심 요직을 맡은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림 속 젊은 남자의 나이와 사회적 위치도 이 인물과 잘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당시 아직 젊은 화가였던 티치아노에게 정치적·문학적 인맥을 가진 바르 바리고 가문의 인물이 앞으로 자신의 힘 있는 후원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을 수도 있다.



Pala Barbarigo(1488)    출처 : britishmuseum


이 작품은 단순한 초상화 이상의 재미를 갖는다.


한 귀족 청년의 얼굴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500년 전 베네치아의 패션과 권력, 인간관계가 한 화면에 압축되어 있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화려한 옷소매지만, 그 옷은 단순한 장식이기보다는 ‘나는 누구이며, 어떤 세계에 속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16세 기식 자기소개서에 가깝다.


티치아노는 옷의 질감과 피부의 빛, 시선과 자세를 통해 이 젊은 귀족의 자신감까지 화면에 표현해 내었다. 오랫동안 이름 없는(이름을 모르는) 남자였던 인물이 학자들의 집요한 추적 끝에 결국 이름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이 그림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2017년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이 그림의 공식 명칭을 ‘지를라모 바르바리고의 초상(Portrait of Gerolamo (?) Barbarigo)’으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이름표 뒤의 '?'는 100% 입증 가능한 문서가 나타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 신중함을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내셔널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에 표기된 작품명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시민을 위한 미술관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 자리한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이곳은 시작부터가 조금 특별하다.


1824년 영국 정부가 당시 은행가 존 줄리어스 앵거스 테인의 소장품 38점을 매입하면서 미술관으로서 처음 개관하였는데, 왕실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출발한 다른 유럽의 여러 대형 미술관들과 달리 ‘국민을 위한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전시가 시작되었다.



내셔널 갤러리    출처 : wikimedia


지금은 13세기 중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서양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 약 2,3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아주 독특한 것은 이 미술관의 문턱이 생각보다 무척 낮다는 점이다. 특별전을 제외한 상설 컬렉션은 상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런던 시민들이 산책하듯 들어와 명화를 감상하는 공간으로 사랑하고 있다.



출처 : nationalgallery


필자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졸업생 유학생들이 식사 후 가장 편하게 들려서 한 시간 정도 명화를 감상하고 나갈 수 있는 언제나 편안한 곳이라는 말을 했을 때 너무너무 부러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