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㉔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서양 미술사를 책으로 공부하다 보면 후반부 시작쯤 꼭 마주치는 이름이 있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세잔을 가리켜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했고,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모든 위대한 화가들의 신"이라 불렀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현대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출처 : wikipedia
세잔은 1839년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덕분에 그는 경제적 어려움 없이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었지만, 미술계의 인정은 좀처럼 따라오지 않았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살롱전에서 계속 낙선을 반복했고, 평단에서는 '그림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딱 막힐 일이지만, 당시 인상파 화가들 역시 비슷한 수모를 겪었으니 어쩌면 시대가 그를 이해하기에 너무 이른 것이었다.
세잔은 인상파와 출발점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목적지를 향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순간의 빛과 대기를 포착하는 데 열중했으나, 세잔은 '자연을 통해 미술관의 작품처럼 견고한 구조를 만들겠다'는 집념 하나로 평생을 버텼다. 사과 하나, 산 하나를 그리면서도 그 안에 숨어 있는 기하학적 질서를 찾아내려 했고, 그는 결국 스스로가 입체파(Cubism)라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되었다.

커튼이 있는 정물(1895) 출처 : wikipedia
세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
두 사람은 엑상 프로방스의 부르봉 중학교 시절부터 단짝이었다. 세잔이 전교에서 가장 내성적이고 고집스러운 아이였다면, 에밀 졸라는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파리 이민자 집 아이였다. 겉보기엔 절대 둘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동급생들의 밉상이었다.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 출처 : namuwiki
두 소년은 친구가 되어 아크(Arc) 강가에서 함께 수영하고, 글도 쓰고, 그림을 그리며 함께 미래를 꿈꿨다. 졸라가 파리로 다시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의 우정은 남녀 간도 아닌데 수백 통의 편지로 이어졌다. 세잔이 화가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졸라의 끊임없는 지지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도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게르부아’에 함께 드나들며 마네(Édouard Manet,1832-1883),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등과 어울렸다.

카페 게르부아(Café Guerbois) 출처 : wikimedia
1886년, 세잔은 졸라로부터 소설 한 권을 받았다. 제목은 『작품(L'Œuvre)』.
여기서 주인공 클로드 랑티에는 재능은 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자신의 미완성 작품 앞에서 스스로 목을 매는 비극적 화가로 등장한다.

작품(L'Œuvre, 1886) 출처 : openlibrary
세잔은 이 인물이 자신을 모델로 한 것임을 직감했다. 그것도 절친한 친구에 의해 실패한 예술가로 멸시당한 것이다. 세잔은 졸라에게 짧은 감사 편지를 한 통을 보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고, 우정은 반세기 만에 그렇게 끝나버렸다. 1902년 졸라가 먼저 사망했을 때, 세잔은 홀로 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생 빅투아르산 연작 — 한 산을 향한 평생의 집착
졸라와의 절교 이후 세잔은 파리를 떠나 고향 엑상 프로방스로 완전히 돌아갔다. 그곳에는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집 근처 어디서나 보이는 생 빅투아르산(Mont Sainte-Victoire)이었다.

생 빅투아르산의 풍경 출처 : wikipedia
세잔은 이 산을 약 30년에 걸쳐 무려 80여 점 이상 그렸다. 같은 산을 이렇게 집착적으로 반복해 그린 화가는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어스름까지, 계절이 바뀌고 빛이 달라질 때마다 같은 자리에 이젤을 놓고 그리고 또 그렸다.
모네의 수련 연작이나 루앙 대성당 연작처럼 '빛의 변화'를 따라간 것은 아니었다. 세잔이 찾고자 했던 것은 그 산의 불변하는 본질이었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구조, 형태, 그리고 공간 등의 생 빅투아르산의 본연의 모습이었다.

생 빅투아르산(Montagne Sainte-Victoire, 1890) 출처 : wikipedia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한 버전(1902~1904년경 추정)은 세잔 말년의 원숙한 필치를 보여준다. 캔버스 위에는 굵고 짧은 붓터치들이 마치 쌓아올린 벽돌처럼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다.
이 붓터치들이 나중에 '패싯(facet)'이라 불리게 되는데, 세잔 특유의 이 방식이 바로 피카소와 브라크가 입체파로 발전시킨 핵심 문법이다. 산은 뜨거운 엑상 프로방스의 하늘을 배경으로 차갑게 솟아 있고, 전경의 소나무와 농가들은 색면들로만 구성되어 마치 추상화에 가까운 구성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