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마네, 〈선상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1874), 독일 뮌헨 누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 미술관
독일 뮌헨의 누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처럼 18~19세기 유럽 미술, 특히 근대 회화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미술관이다. 오늘 다루려는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가 그린 몇 안 되는 인상파풍의 작품 〈선상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다.
에두아르 마네의 모습 이미지 출처 : wikipedia
보통 인상파 화가들을 언급할 때 선두에 마네와 모네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마네는 인상파라기보다는 근대 회화를 활짝 열어 놓은 선구자적 화가이며, 엄밀히 말해 인상파 전시에 참여한 적도 없다. 본인 역시 직접 자신이 인상파 화가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1874년에 에두아르 마네가 친구이자 동료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를 모델로 그린 유화로 모네가 아르장퇴유(Argenteuil)의 센강 위에 띄운 작은 배 안에서 그림에 열중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캔버스 오른편에는 그의 아내 카미유 모네가 앉아 있는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보트는 당시 부유한 화가였던 구스타프 카유보트가 구입 자금을 지원해 마련한 것으로, 배의 구조를 대거 손보아 물 위에서 작업이 가능한 일종의 ‘부유하는 아틀리에’로 개조된 것이 특징이다.
선상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에두아르 마네, 1874년 출처 : wikepedia
이 그림에서 마네가 한동안 모네와 가깝게 지내며 인상주의 화가들의 야외 제작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분명 엿보인다. 모네의 작업 방식을 관찰하며 빛에 따라 변하는 물의 질감을 자신의 화법 안에서 인상파적 터치로 실험하듯 표현했다. 마네는 모네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모네를 지속적으로 도왔다. 당시 대부분 가난했던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마네는 부유한 법관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마네와 모네는 이름이 비슷해 두 사람의 연배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마네가 모네보다 여덟 살 연상이다.

모네가 그린 또 다른 센강의 아르장퇴유, 1873년 이미지 출처 : wikipedia
마네는 흔히 근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며, 전통적인 아카데미즘과 이후 등장하는 인상주의 사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 〈올랭피아〉(1865) 등의 작품을 통해 당시 관습적이던 원근법과 명암법을 과감히 해체하고 평면적인 색면 구성과 검정색 윤곽선을 강조했다. 마네는 비슷한 시기에 〈아르장퇴유의 모네 가족〉(1875, 미국 보스턴 미술관)도 그렸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아르장퇴유(Argenteuil)는 파리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약 12km 떨어진 지역으로, 라틴어로 ‘은, 은빛’을 의미하는 어원을 지닌다. 센강 수면이 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던 풍경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어로는 흔히 ‘윤슬’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독일 뮌헨 누이에 피나코테크 (Neue Pinakothek)
누이에 피나코테크는 ‘새로운 회화관’이라는 뜻으로,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1세에 의해 1853년 설립되었다. 당시 기준으로 ‘동시대 미술’, 즉 19세기 미술을 체계적으로 수집·전시하기 위해 세워진 세계 최초의 공공 미술관으로 평가된다. 고야와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에서 시작해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흐, 고갱 등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전시 작품의 범위가 매우 넓다.
인상주의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에게 이곳은 특히 매력적인 미술관이다. 뮌헨에는 프랑스의 루브르에 해당하는 알테 피나코테크, 오르세 미술관에 비견되는 누이에 피나코테크, 그리고 퐁피두 센터의 현대미술관과 같은 성격의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Neue Pinakothek 입구 모습 이미지 출처 : wikipedia
뮌헨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하루 일정으로는 부족하고, 1박 2일에 걸친 세 미술관 순례를 권하고 싶다. 특히 누이에 피나코테크는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건물의 약 3분의 1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남은 부분도 전소되어 한동안 잔해물 투기장으로 방치되었다. 이후 1981년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으로 재건축되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전적인 알테 피나코테크와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현대적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다행히 전쟁 발발 직후 주요 소장품들은 안전한 장소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이 그림은 단순히 한 화가가 다른 화가를 그린 초상에 머물지 않는다. 마네는 이 장면에서 친구 모네의 작업 모습을 기록하는 동시에, 자신이 서 있던 회화의 경계선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카데미즘과 인상주의 사이, 실내와 야외, 완성된 형식과 실험 사이에 놓인 순간이다. 센강 위를 떠다니는 작은 배는 작업실이자 경계이며 빛은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그림은 인상주의를 선언하는 작품이라기보다 변화의 문턱에서 잠시 멈춰 선 한 화가의 시선을 담은 기록처럼 느껴진다. 누이에 피나코테크의 조용한 전시실에서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하나의 양식이 태어나는 찰나보다도 예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직전의 망설임과 집중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