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⑱ 산드로 보티첼리- [불굴의 정신]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보티첼리의 첫 도약, ‘불굴의 정신’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는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화가이다. 르네상스의 3대 천재 화가로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1452-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1483-1520)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보티첼리는 그들보다 앞서 피렌체에서 명성을 얻은 화가이다.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ipepi)였으나, '작은 술통'이라는 뜻의 '보티첼리'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정작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그의 친형 별명인 보티첼리가 마음에 들어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가 본인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 출처 : wikipedia
화가 필리포 라피(Fra Filippo Lippi,1406-1469)의 수제자였던 보티첼리는 스승의 화법을 이어받아 형상을 강한 선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는 본인의 공방을 열기 전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수학하기도 했는데, 두 사람은 7살의 나이차가 있었지만 다빈치는 보티첼리의 풍경 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노트에 비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보티첼리는 ‘프리마베라(Primavera)’나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과 같은 우아하고 관능적인 작품들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초기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은 바로 ‘불굴의 정신(Fortitude)’이다.
‘불굴의 정신’은 1470년 피렌체에 처음으로 본인의 공방을 열고 첫 번째로 의뢰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피렌체의 많은 귀족들이 앞다투어 보티첼리에게 작품을 의뢰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피렌체 맹주인 메디치 가문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보티첼리는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작품에서 메디치 가문 사람들,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1389-1464)와 피에로 데 메디치(Piero di Cosimo de' Medici,1416–1469), 요한 데 메디치(Giovanni di Cosimo de' Medici,1421-1463)를 동방박사로 그려 넣으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1475)] 출처 : wikipedia
‘불굴의 정신’은 원래 피렌체의 상업 재판소(Tribunale della Mercanzia) 회의실을 장식하기 위해 기획된 '7가지 덕목(Virtues)' 연작 중 하나다. 이 연작은 정의, 소망, 신앙, 자애 등 인간이 갖춰야 할 일곱 가지 미덕을 화폭에 담기 위해 제작되었다. 보티첼리는 이와 같은 대규모 연작을 제작하기에 경력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메디치 가문의 적극적인 후원을 바탕으로 마지막 덕목인 '불굴의 정신'을 담당하게 되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불굴의 정신(1470)] 출처 : florenceasitwas.wlu.edu
이 그림은 단순한 여인의 초상이 아니라, 도덕적 용기와 인내를 의인화한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은 갑옷을 입고 지휘봉을 든 채 보좌에 앉아 있다. 이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내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마냥 강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사색적이고 우수에 젖어 있기도 하다. 이는 진정한 용기가 무모한 힘보다는 깊은 성찰에서 나온다는 보티첼리만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볼 점은 보티첼리 특유의 섬세한 선의 아름다움이다. 보티첼리는 인물의 윤곽선을 강조하면서도, 갑옷의 금속 질감과 옷감의 부드러움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여인이 앉아 있는 보좌의 장식은 매우 정교하며, 원근법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 인물이 눈앞에 있는 듯한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진주와 보석 장식을 그려 넣음으로써 메디치 가문의 취향을 표현하는 동시에, 성스러운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이는 훗날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에서 완성되는 보티첼리 화풍의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5)] 출처 : wikipedia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불굴의 정신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곳은 메디치가의 행정사무실로 사용되던 곳인데 사무실이 이탈리아어로 우피치이다. 미술관에는 보티첼리를 위한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불굴의 정신’은 메디치가의 압력이 있기 전까지 총 7점의 작품을 그리도록 예정되어 있던 폴라이우올로(Antonio del Pollaiuolo,1431–1498)가 그린 나머지 6개의 덕목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관객들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보티첼리의 작품을 직접 비교해 볼 수 있다. 폴라이우올로의 작품들이 평면적이고 정형화된 느낌을 준다면, 보티첼리의 ‘불굴의 정신’은 홀로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출처 : www.uffizi.it
우피치 미술관의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 '보티첼리 방'이라 불리는 10-14번 방은 항상 관객들로 가득 채워진다. 우피치 미술관은 사전 예매를 하더라도 대기 줄이 줄어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관람객 수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려면 2~3시간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5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일정이 한정되어 있다면 출국 전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날짜와 시간을 지정해 예매하는 것이 안전하다. 매달 첫 번째 일요일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대기 시간이 길어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필자 역시 오랜 시간 줄을 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였다.

바사리 회랑(Vasari Corridor) 출처 : wikipedia
미술관 내에는 관람객들이 잘 알지 못하는 특별한 통로가 하나 있다. 바로 바사리 회랑(Vasari Corridor)이라 불리는 비밀통로다. 1565년,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1511–1574)가 설계한 이 통로는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들이 군중과 섞이지 않고 베키오 궁전에서 피티 궁전(메디치 가문의 저택이었다)까지 이동하기 위해 만든 비상 회랑이다.
약 1km에 달하는 이 폐쇄된 복도는 베키오 다리 위를 지나 미술관 내부로 연결된다. 과거 권력자들의 은밀한 이동 통로였던 이곳은 현재 예약된 소수의 인원에게만 공개되며, 미술사의 수많은 자화상과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있다. 영화 ‘인페르노’(2016, 댄 브라운 감독 다빈치 코드 3편)를 보면 주인공들이 이 회랑을 통해 열심히 도망가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우피치 미술관의 긴 복도를 지나 다시 '불굴의 정신' 앞에 서면, 우리는 단지 르네상스의 한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다. 권력과 신앙, 미적 감각이 교차하던 15세기 피렌체의 공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선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던 한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서 있다.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