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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7

샤갈, 영원의 빛을 바라보다

 몇 해 전, 예술가의 마을이라 불리는 코트다쥐르의 작은 언덕 마을인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에 위치한 샤갈의 무덤을 찾았다. 샤갈 미술관은 30분 가량 떨어진 니스에 있지만 샤갈은 마지막 생을 보낸 이 언덕에 묻히길 바랐다. 중세 성곽이 고스란히 남은 아름다운 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공동묘지, 입구를 지나 샤갈의 묘지로 안내하는 연두빛 푯말을 따라가다 드디어 그의 무덤과 마주했다.


생폴드방스의 샤갈의 무덤 

누군가 방금 두고 간 듯 아직 싱싱한 장미꽃 한 송이, 자신의 이름을 새긴 추모객이 두고 간 동글동글한 자갈들, 낮게 깔린 햇빛, 그리고 조용히 서서 색의 시인을 기억하는 세계 곳곳에서 온 낯선 추모객들. 샤갈의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되는 그 황홀한 듯 아름다운 색과 현실과 환상의 모호함은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은 듯했다. 샤갈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사랑이 더 선명해지는 문턱이었을지 모른다.



생폴드방스 약도, 샤갈의 무덤은 제일 오른쪽 13번 구역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887–1985)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러시아(현 벨라루스)의 비텝스크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그는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통과하며 파리·베를린·뉴욕을 떠돌았다. 그러나 그 시간들의 상흔을 지워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상실과 유랑 그 사이에서 피어난 사랑과 기억을 아름다운 색과 빛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샤갈과 아내이자 뮤즈였던 벨라(1944)   이미지 출처  : Google Arts & Culture


무엇보다 벨라와의 결혼 이후, 격변의 사회·정치적 회오리와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그가 끝내 사랑과 기쁨을 노래할 수 있었던 힘은 가족에서 왔다. 벨라는 샤갈 예술의 영감이자 피난처였고, 그의 작품이 언제나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 또한 이 ‘벨라의 빛’ 덕분이었다.


“내 그림에는 동화도, 우화도, 민속 전설도 없습니다. 우리 내면의 모든 것이 현실이며, 어쩌면 겉으로 드러나는 세상보다 더 현실적입니다.” 


샤갈은 특정 사조인 입체파나 야수파 등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다. 대신 고향 비텝스크에 대한 향수,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정, 동물과의 교감, 종교적 상징,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감정을 환상적 색채로 엮어 자기만의 시간을 창조했다.




이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샤갈 전시회의 제목은 ‘비욘드 타임’이다. 연대기의 나열이 아니라 겹치는 시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억(Memory)을 시작으로 주요 의뢰작(Major Commissions), 파리(Paris), 영성(Spirituality), 색채(Colour), 지중해(Méditerranée), 기법(Techniques), 꽃(Flowers)까지 8개의 섹션으로 전개된 이번 전시회는 ‘과거·현재·영원’이 한 화면에 포개지는 샤갈의 시간법을 체험하게 된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는 공간의 흐름을 쫓으며 그의 영성, 샤갈의 믿음과 신앙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샤갈의 성서 삽화 작업은 딜러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의뢰로 시작되었다. 그는 1931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을 직접 방문해서 예루살렘의 강한 햇살, 유대 광야의 건조한 공기, 요르단 강의 물결을 체험하며 스케치를 남겼고, “나는 그곳에서 빛과 대지, 물질을 동시에 발견했다”고 적었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성서 이야기가 숨 쉬는 시간감—과거·현재·영원이 겹치는 감각—을 확인한 그의 여행은 이후 몇 차례의 재방문으로 이어졌고, 귀국과 함께 삽화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이후 샤갈은 성서를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으로 붙들고 평생의 주제로 확장했다.


section.4 영성에 전시된 샤갈의 성서 배경의 작품들   이미지 출처: MHNSE.com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된 성경의 삽화들은 굵기와 농담이 다른 선만으로도 인물의 숨결과 사건의 무게가 전해지는 듯 했고, 더해진 색채는 성경의 본문을 설명하기보다 빛의 언어로 옮겨 적은 듯 했다. 애굽을 탈출해 홍해를 건너는 무리의 긴장과 환희, 다시 치켜오르는 높은 파도에 휩쓸리는 추격자들의 표정은 대비 속에 놓인다. 십계명을 들고 내려오는 모세와 산 아래 백성들의 동요, 야곱의 꿈과 요나의 심연, 목동 다윗의 눈빛까지 샤갈의 성경은 이야기의 줄거리가 아니라 은총의 정조를 먼저 들려준다.



하다사 의료센터의 스테인트 글라스 작품을 구현한 전시관


1962년 설치된 이스라엘 하다사 의료센터의 열두 지파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정점이다. 작품 헌정식에서 샤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은 내 마음과 세계의 심장 사이의 투명한 칸막이입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빛을 감지하는 것이고, 창은 그 단순함과 우아함을 통해 그 빛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비슷한 빛의 경험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에서도 이어진다. 둥근 천정 위로 음악과 도시의 장면들이 서로를 비추며 회전할 때, 색은 음악이 되고 음악은 빛이 되어 샤갈의 그림은 커튼콜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무대의 빛처럼 어둠을 환히 밝혀준다. 황금빛 장식과 인테리어 속에서도 샤갈의 그림은 가장 화사하고 하려하다.



전시회 내부 샤갈의 영성에 대한 안내문 

샤갈의 죽음 표상은 더욱 인상적이다. 그는 전쟁과 추방, 폭력의 시간을 통과한 세대의 화가로서 절망을 재현만 하지 않았다. 십자가를 그리되 유대적 표징을 겹쳐 넣고, 사방에 흩어진 이들의 얼굴을 한 화면에 소환함으로써 죽음을 공동체적 고난에 대한 연대의 징표로 읽히게 했다. 그 십자가는 무엇을 증명하기 보다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계신 자비의 빛을 가르킨다. 


1944년, 사랑하는 아내 벨라를 감영병으로 갑자기 떠나보낸 뒤에도 그녀는 그의 캔버스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샤갈은 상실을 덮지 않고 그리움을 색과 도상으로 굳혀 화면 곳곳에 그려 넣었다. 공중을 떠오르는 신랑과 신부, 흐트러지듯 아름다운 꽃다발, 음악의 선율. 그것들은 장식이 아니라 남은 자가 애도를 이어가는 ‘지속적 유대’의 리듬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종결이라기보다 사랑이 다른 방식으로 현재형을 얻는 일, 곁을 잃은 이후에도 삶의 돌봄이 계속되도록 해주는 기억의 방식으로 읽힌다.



노란색 캡션은 세계 최고 공개되는 작품들


말년의 샤갈은 아름다운 생폴드방스에 자리 잡고, 작은 공동묘지와 성곽을 일상의 원경으로 두고 살았다. 아침마다 작업실에서 그림과 판화·스테인드글라스를 구상했고, 가족은 물론 예술가 이웃들과 교류하며 노년을 보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기억과 빛, 사랑과 화해의 주제는 그의 마지막 삶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 샤갈은 평생 그려온 그 영원의 빛을 바라보았을까.


*출처가 없는 이미지는 촬영이 가능한 구역에서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이정선 이라이프 연구원

동국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연극사와 작품연구를 강의하였다. 이후 숭실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초고령사회에서 보다 의미있는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기 위한 문화예술을 접목한 프로그램과 좋은죽음을 위한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다. 현재는 에덴낙원의 기획실장과 이라이프아카데미의 책임연구원으로서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통합적 복지와 문화적 실천을 기획·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