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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8

고령화 사회의 희망 - 노인의학

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고령화 사회의 희망 - 노인의학


 이스라엘은 부유한 나라들 가운데서도 평균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인구를 가진 나라 중 하나입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는 멕시코와 함께 청소년 부양비 지출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이는 곧 젊은 층 인구 비중이 크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이스라엘의 합계출산율은 2.9명으로, OECD 평균인 1.5명을 훨씬 웃돕니다. 2024년 추정 중위연령 역시 약 30.1세에 불과해, 다수의 고소득 국가들이 40세 전후인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습니다. 이러한 수치의 배경에는 정통파 유대인과 베두인 공동체의 높은 출산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특징은 단순히 젊은 인구가 많다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장수율 또한 OECD 국가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높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젊음’과 ‘장수’라는 두 지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나라입니다. 오늘날 이 장수율이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현재 출산율이 높아서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로 대거 유입된 이주민 세대의 베이비붐이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그 시기의 인구 폭발은 이스라엘 사회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세대가 이제 노년층에 진입하면서 고령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스라엘의 인구 구조는 다소 역설적입니다. 젊은 인구가 많은 동시에 노년층 비중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꼽힙니다. 끊임없는 테러 위협과 독립 이후 77년 동안 이어진 전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 사회가 가진 독특한 모순이자 동시에 강인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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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은 독특한 인구 구조 속에서 이제 고령화로 인한 사회 문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노년층의 만성질환 문제입니다. 2022년 기준 평균 기대수명은 유대인 여성 85.1세, 무슬림 여성 81.8세, 유대인 남성 81.5세, 무슬림 남성 77세였습니다. 수명 자체만 놓고 보면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낮은 평균수명을 가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이스라엘은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는 인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다시 말해 오래 살지만 만성질환을 겪는 노인이 많다는 것이죠. 이 배경에는 의료체계의 구조적 요인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의료센터들은 정부 보조금 혜택이 더 크기 때문에 산과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홍보합니다. 또 건강보험 기금 역시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젊은 가정이 회원이 되기를 선호합니다. 반대로 치료비 부담이 큰 노년층은 제도적으로 불리한 환경에 놓이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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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이스라엘 내에서는 노인의학을 국가적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부모와 조부모와 가까이 지내며 노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장점만으로는 부족하고, 노인의학에 대한 제도적·전문적 관심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특히 이 분야를 전담할 의사가 크게 부족합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젊은 의사들은 의료 수요가 높은 변두리 지역보다는 부유하고 명망 있는 중심부에서의 근무를 선호합니다. 그 결과 노인의학은 의사 공급에서 더욱 취약한 분야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의과대학에서 노인의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적어도 전공 과정에서 노인의학 실습을 반드시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의사를 배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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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보건 정책 전문가인 나다브 다비도비치 교수(Nadav Davidovitch, 벤구리온 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전 학장이자, 현재 예루살렘 타우브 사회정책연구소 보건정책 프로그램 의장)는 이스라엘의 보건 시스템 전체가 재구조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여전히 생존해 있는 홀로코스트 세대의 노인들이 2050년 이전에는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사회가 지금까지는 주로 홀로코스트 생존 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왔다면, 이제는 알츠하이머·파킨슨병·외로움·우울증 등 일반 노년 세대가 겪는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희망적인 점은 이스라엘이 노인을 위한 국가 계획을 갖춘 몇 안 되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다비도비치 교수는 사회가 충분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간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그의 흥미로운 제안 가운데 하나는 요양시설의 위치에 관한 것입니다. 요양시설을 사회로부터 고립된 한적한 곳에 세우는 대신, 오히려 유치원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인들이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며 교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노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나다브 다비도비치 교수가 CNN에 출연한 모습, 이미지 출처: americansforbgu 공식 홈페이지

이스라엘 사회복지부의 쉬를리 레즈니츠키 박사(Shirli Resnizky, 히브리대학교에서 사회학·국제관계학 학사, 사회학 석사, 하이파대학교에서 노인학 박사)는 현재 제기되는 원격진료 확대 주장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녀는 오히려 노인의학 분야의 전문가를 충분히 양성하고 확보하여, ‘가정에서의 치료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혁명은 단순합니다. 노년층이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더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환자의 집을 찾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건강보험 기금의 부담을 줄여 경제적으로도 유리할 뿐 아니라, 실제로 많은 이스라엘 노년층이 선호하는 치료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가족 구성원의 80% 이상이 부모나 조부모를 직접 돌보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 방문 치료는 노인의학 발전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askbart 공식홈페이지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은 이미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인의학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으며, 2021년부터 대한노인의학회를 중심으로 ‘노인의학 인증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아직 제한적이고, 제도적 기반 자체도 이스라엘보다 약한 편입니다. 특히 급격히 늘어나는 고령화 속도에 비해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대응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의료·요양병원·요양시설 간의 유기적 연계가 부족한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은 일반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가족 공동체가 일정 부분 완충 역할을 하지만, 한국은 가족 돌봄 자체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노년층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약 40%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합니다. 노인 자살률 또한 매우 높은 편으로,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한노인의학회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대한노인의학회 공식 홈페이지


결국 고령화 사회의 도래는 이스라엘이든 한국이든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젊은 인구와 장수 인구가 동시에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이스라엘은 이미 노인의학을 미래 핵심 과제로 삼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도 깊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높은 노인 빈곤율, 그리고 약화되는 가족 돌봄이라는 삼중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노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노인의학적 전문성을 키우고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32)고 말씀합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이어집니다. 결국 노인의학은 단순히 노인만을 위한 의학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맞이하게 될 미래를 준비하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세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신앙적 실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