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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이스라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

이스라엘에서 배운 지혜의 유산


① 이스라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


이스라엘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2022년 기준 1,128,2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 이는 다른 OECD 국가들보다 이스라엘이 출산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 세대의 수가 태어나는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06년, 702,000명이었던 65세 이상 인구는 16년 만에 위와 같은 100만 명이 훌쩍 넘는 수치가 되었고, 전체 인구 비율에서도 10%에서 12%로 증가하는 추세여서 이스라엘도 계속해서 노년 인구는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2019년 기준, 이스라엘의 기대수명 또한 83세로 세계적으로 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일본(84세)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인다. 65세 이상 노인의 노동 시장의 참여 비율은 한국이 35%정도로 제일 높고, 다음이 일본 26%, 그 다음이 이스라엘로 22% 세 번째이다. 이 수치들을 종합해 보면 아직까지 이스라엘의 노년 인구는 한국과 일본에 비해 그 비율이 높진 않지만 일본 다음으로 기대수명이 높고, 노동시장에 여전히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세대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는 기대수명이 높아지면서 인구의 상당 부분이 한 명 이상의 손주를 둔 조부모가 되는 특권을 누리고 증조부모가 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다른 나라들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스라엘의 현재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조부모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부모와 함께, 혹은 홀로 이스라엘로 이민 온 세대는 조부모와 함께 삶을 공유할 기회가 현저히 적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스라엘에서 65세 이상의 사람들이 조부모가 되고, 혹은 증조부모가 된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특별하고 감동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The First Seder in Jerusalem (1949-50)’ by artist Reuven Rubin   이미지 출처 : RUBIN MUSEUM


조부모로의 전환은 가족과 개인 생활에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조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기존 역할 범위에 추가되는 새롭고 중요한 역할의 시작을 말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손자녀의 탄생을 인생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여기고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조부모가 된다는 것을 노년과 동일 시 여겨서 그 역할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이스라엘은 많은 경우에 있어 전자에 해당하는데, 그 배경은 이러하다.


1880년대부터 1940년대에 이르는 이민의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많은 이주민들이 자녀들과의 적절한 교감이 없이 노동에 시달렸다. 특히 건국의 근간이 되었던 키부츠1) 들의 경우 자녀 세대들의 대부분은 공동 탁아소에서 지냈다. 이 시기의 부모들은 홀로코스트의 상실과 나라의 건국이라는 큰 짐을 지고 살아낸 세대였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감이 부족했던 가운데 이들이 조부모가 되었을 때 그들은 그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3세대 이상의 가족 간의 관계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잃지 않으려 헌신적으로 가족을 돌보는 조부모와 여전히 일부 독립적인 생활을 고집하는 조부모 세대가 나뉘게 된 것이다.


키부츠 미그달의 노동자들    이미지 출처 : wikipedia


1960년대 이전까지 심리학자들은 조손가정에서 갈등의 발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접촉을 되도록 피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60년대 이후 가족치료가 도입되면서 대가족이 아동발달 및 스트레스와 위기 상황에서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부모의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이는 헌신적으로 가족을 돌보며 함께 하는 이스라엘의 조부모들에게도 힘이 되었다. 요즘은 대가족의 틀을 벗어나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가정들이 핵가족의 틀을 유지할 뿐 아니라 심지어 1인 가정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많은 이스라엘의 가정들도 조부모와 떨어져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지만 여전히 주말마다 조부모를 방문하고 돌보는 가정들도 많이 있다.



이미지 출처 : www.mako.co.il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거주하던 아파트 주변은 주말마다 가족들이 모임을 가져 목요일 밤이면 많은 가족들이 테라스에 나와 가족 모임을 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하지만 1층에 사시던 할머니는 주말마다 찾아오는 가족이 없었고, 매일 같이 오전에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고 낮에는 커뮤니티 센터에 다니시던 분이셨다. 가족 없이 홀로 노년 생활을 지내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월절 때에 할머니 집에 가족이 찾아왔다. 우연히 집 앞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딸의 방문이 몹시 기뻐 보였다. 딸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자주 방문하지 못했는데, 유월절(봄)과 초막절(가을)이면 어김없이 자녀들과 함께 이스라엘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 뵙고 명절 식사를 함께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손자녀들은 할머니가 살아온 이민 세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히브리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열심히 설명하신다고 했다. 자녀도 몇 년 후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자신의 집 근처에서 살게 될 거라면서 좋아하셨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스라엘은 여전히 65세 이상 인구의 98%이상이 지역사회에 거주하고 있으며, 1.7%만이 장기 요양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대가족 문화에서 핵가족 문화로 바뀐 이스라엘에서도 여전히 주말이면 많은 자녀들과 손자녀들이 지역사회에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고, 명절이면 어김없이 온 세대의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조부모들은 어린 손자녀들에게 그들의 부모 세대가 하기 힘든 가족과 국가적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손자녀들이 가족 맥락에 기반한 개인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2004년 이스라엘의 의대생과 교육학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첫 기억에 관한 연구에서 피험자의 6%가 기억하는 첫 기억의 주인공이 부모가 아닌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었다 (어머니 34%, 아버지 18%). 어린 시절 가정 안에서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와 함께 한 좋은 기억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여전히 가족이, 그리고 세대 간 연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개인화 성향이 강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스라엘이 가진 모습은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다음 세대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 왜 중요한지 느끼게 해준다. 


1) 키부츠 kibbutz (Hebrew: קִבּוּץ / קיבוץ)란 이스라엘의 집단노동, 공동소유라는 사회주의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집단농장을 말한다. 이스라엘 ‘재건 신화’의 주축인 키부츠는 자발적 공동소유제를 채택한 독특한 공동체로 공동소유·공동육아·공동식사·직접민주주의 등의 운영 시스템을 일궜다. 


이범수 지역전문가

20여 년 동안 이스라엘에 거주하며 이스라엘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성서학과를 졸업하고 Bar ilan University에서 이스라엘 학을 전공하였다. 주이 한국 대사관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에 근무하며 지역 전반에 걸친 현안들을 경험하였고 현재 이스라엘 성서, 역사, 지리, 문화, 언어,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