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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에덴클래식 #24 애절한 아름다움이 담긴 클래식



말러의 교향곡 5번은 일반적으로 4악장으로 구성된 다른 교향곡과 달리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베니스에서 죽음’에 삽입되어 더욱 널리 알려진 4악장 아다지에토는 5번 교향곡에서뿐 아니라 말러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이 아다지에토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영화 말미의 대사와 말러의 아다지에토의 선율이 오버랩되면서 보는 이들에게 묘한 여운을 남긴다. 



말러, 교향곡 5번

Mahler, Symphony No.5 in C sharp minor



베니스 리도섬     출처 : 리도섬 공식 관광 사이트 www.visitlido.it

10여 년 전 세 번째로 베니스를 여행했을 때는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 리도섬에서 하루를 보냈다. 베니스에서 유일하게 해변이 펼쳐진 곳으로 유럽인들의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있는 섬이지만 역사적 유물이 있는 곳도 아니었고 시내 중심부처럼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낄만한 장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비교적 따뜻한 초가을이었지만 해변은 한산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 선율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Morte a Venezia) 포스터      출처 : cine21.com

‘심장 질환이 있는 노년의 음악가 구스타프는 요양 겸 휴양차 베니스에 왔다가 호텔에서 마주친 미소년 타지오에게 온 마음을 빼앗긴다.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채 그 미소년을 쫓아다니는 구스타프는 호텔 지배인으로부터 콜레라가 베니스 전역에 퍼져있다는 말을 듣고도 떠나지 못한다. 결국, 타지오가 베니스를 떠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구스타프는 곱게 화장을 하고 리도섬 해변에서 마지막으로 타지오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숨을 거둔다.’

60대 중반에 접어들어 탐미주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의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1906~1976)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그의 만년의 걸작이지만 퇴폐미 성향으로 인해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작품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동성애, 환희와 절망, 그리고 죽음 등 한 예술가의 관능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사랑의 감정을 영상과 침묵 그리고 음악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해 낸 명작이다. 특히 영화 전편에 흐르는 말러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는 이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과 완전히 일치하듯, 느리고 슬프지만 가끔은 격하게 감정을 토로하는 듯 애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극히 아름답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1912년 First print        출처 : 위키피디아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다. 말러의 음악을 좋아했던 토마스 만은 1911년 그의 부고 소식을 접한 후 말러의 이름인 구스타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 소설 속에서의 작가 구스타프는 비스콘티의 영화에서는 음악가로 변신했다. 교향곡 속에 인간의 숙명적인 고뇌와 사랑 그리고 죽음을 담아냈고, 말년에는 고뇌와 세속적 환희를 초월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사상까지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구스타프 말러는 도달할 수 없는 절대미(絶對美)를 쫓다 죽음에 이르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주인공 구스타프와 닮아있다.


비엔나 궁정 오페라의 감독으로 활동하던 1907년의 구스타프 말러       출처 : 위키피디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작품은 가곡과 교향곡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20대에 지휘자 겸 가곡 작곡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말러는 1888년 작곡한 5개의 교향시를 손질해 1896년(36세)에 이르러 첫 교향곡으로 발표했다. 1번 교향곡은 기악으로만 연주되지만 표제음악적 성격이 짙다. 2번부터 4번까지 3개의 교향곡에는 성악을 도입해 ‘죽음과 부활’, ‘방대한 우주’, ‘천상의 삶’을 그려냈다. 가곡 작곡가로 시작한 말러가 자신의 사상을 교향곡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 채워놓기 위해서는 아마도 인간의 목소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20세기가 시작된 1901년(41세) 작곡하기 시작해 이듬해에 완성한 교향곡 5번은 이전의 작품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우선 성악을 배제한 고전주의 형식의 순수 기악곡 악장으로만 구성된 교향곡이며, 표제적인 성격도 없다. 그리고 바흐의 복잡한 푸가 선율을 연상시키는 정교한 폴리포니(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여러 선율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진행하는 음악)를 도입해 작곡기법도 한층 진보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3부(1부: 1,2악장, 2부: 3악장, 3부: 4,5악장)로 구분해 1,2악장과 4,5악장 사이엔 쉼 없이 연주한다.


말러의 교향곡 5번 Manuscript        출처 : https://lvphil.org

(1악장) “신중한 속도로, 엄격하게, 장송 행렬과 같이”

트럼펫 독주와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팡파르로 시작해, 어둡고 침통한 장송행진곡이 슬픈 곡조의 아름다운 선율과 대비를 이루며 전개된다. 끝부분에 이르러 슬픔이 절정에 다다른 듯 울부짖고 트럼펫 팡파르도 합세하나 이내 지친 듯, 외마디 관악기 독주에 이어 짧은 현악의 피치카토로 끝을 맺으면서 2악장으로 쉬지 않고 넘어간다.

(2악장) “폭풍처럼, 아주 격렬하게”

내용상 1악장과 연결되어 있다. 1악장의 주제가 되풀이되기도 하지만 한층 격렬해졌다. 분노의 선율과 평화로운 선율이 교차하며 전개돼 혼란스럽기까지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분노와 평화가 합쳐진 듯, 안정되고 장중한 화음이 화려하게 전개되면서 구원의 빛이 보인다. 그러나 끝맺음은 조용하고 쓸쓸하다.

(3악장) “스케르초, 활기있게, 너무 빠르지않게”

호른의 독주로 시작하는 3악장은 스케르초 풍의 춤곡이다. 남부 독일의 민속 춤곡인 렌틀러 풍도 들리고 왈츠 풍의 선율도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때론 난폭스런 춤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 혼란스러운 스케르초 풍의 춤곡들을 통해 말러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혹 평온한 삶 속에도 항상 내재해 있는 인간의 고뇌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그려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4악장) “아다지에토, 매우 느리게”

5번 교향곡에서뿐 아니라 말러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영화 ‘베니스에서 죽음’에 삽입되어 더욱 널리 알려진 악장으로,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 목가 풍의 선율 속에는 사랑의 감정과 쓸쓸함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피날레 5악장의 전주곡에 해당하는 곡으로 작곡했지만 워낙 유명해 독립적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5악장) “론도, 피날레, 알레그로”

호른, 파곳, 오보에 등 관악기들의 솔로로 조용하게 그러나 쾌활한 선율로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밝고 환희에 찬 분위기다. 4악장의 쓸쓸한 여운이 남아있어 갑작스런 변화가 익숙하지 않지만, 관악기들의 다채로운 선율들을 따라가다 보면 경쾌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4악장의 애절한 사랑의 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도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끝맺음도 밝고 화려하다 못해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21세기 들어 불어닥친 말러의 열풍은 식을 줄을 모른다. 말러 교향곡 콘서트는 예매가 쉽지 않다. 며칠 전 KBS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5번 공연도 조기 매진되어 라디오를 통해서 들어야만 했다. 최근에 상영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도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흐른다. 영화 말미의 대사가 말러의 아다지에토의 선율과 오버랩되어 묘한 여운을 남긴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 음악 들어보기

1.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스틸 컷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2.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final scene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3. Mahler, Symphony No.5
Claudio Abbado, Lucern Festival Orchestra (2004년 live concert)




4. 영화 ‘헤어질 결심’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 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