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의031-645-9191

에덴 미디어

컬처
2022-10-29

에덴클래식 #22 강렬한 사랑이 담긴 클래식

에덴클래식 #21 강렬한 사랑이 담긴 클래식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은 파리 초연 당시 내용이 문란하고 일관성 없는 음악이라 혹평을 받았다. 비제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비로소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카르멘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너무나 사랑 받는 작품이 되었다. 익숙한 선율의 아리아들과 함께 자유롭게 사랑하는 집시여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위험한, 하지만 매력적인 팜 파탈


‘치명적인 여인’으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팜 파탈 (Femme Fatale)’은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매혹적인 여성을 의미하는 사회 심리학적, 예술적 용어로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예술에 주요 소재로 등장해왔다. 적장을 유혹한 후 목을 벤 구약성서 속의 유디트는 보티첼리, 카라바조, 클림트 등 수많은 화가의 작품으로 남아있고, 유대왕국의 헤롯 왕을 춤으로 유혹해 자신의 사랑을 거부한 예언자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속의 여인 살로메도 대표적인 팜 파탈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팜 파탈의 이야기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샤론 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 우선 떠오르지만, 애인의 아버지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쥘리에트 비노슈 주연의 프랑스 영화 ‘데미지(원제 : Fatale)’는 팜 파탈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팜 파탈은 오페라 작곡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알반 베르크의 ‘룰루’, 마스네의 ‘마농’ 등 팜 파탈을 등장시킨 오페라들은 남성을 파멸시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극적인 줄거리에 아름다운 음악을 입혀 극적 긴장감을 더했다. 그렇지만 오페라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팜 파탈을 한 명 꼽으라면 단연코 카르멘일 것이다. 관능적인 열정이 넘쳐나는 음악과 춤, 스페인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투우사, 유랑민족 집시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팜 파탈 카르멘과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파국으로 치닫는 순진한 군인 돈 호세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극적으로 잘 표현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고금의 모든 오페라 중에서 가장 인기 있고 친숙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3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르주 비제는 이 오페라 하나만으로도 프랑스가 자랑하는 위대한 작곡가로 남아있다.


조르쥬 비제의 명작 <카르멘>



조르주 비제(George Bizet, 1838~1875)  출처 : 위키피디아


1838년 파리에서 태어난 비제(George Bizet, 1838~1875)는 음악 신동으로, 9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피아노, 작곡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17세에 작곡한 그의 유일한 교향곡은 스승 구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지만 세련된 선율 미와 예술성이 드러난 수작이다. 19세에 로마 대상을 받아 3년간 로마로 유학길에 오른 비제는 1860년(22세) 파리로 돌아온 이후 오페라 작곡에 전념하기 시작해 1863년(25세)에 첫 대작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를 발표했다. ‘귀에 익은 그대 음성’ ‘신성한 사원에서’ 등 몇 아리아는 훌륭했으나 대본이 좋지 않아 흥행에는 실패했다.


두 번째 발표한 ‘아름다운 퍼스의 아가씨’ 역시 호평을 받지 못하자 의기소침해진 비제는 한동안 작품을 발표할 자신을 잃었던 것 같다. 1872년(34세) 알퐁스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 (L’Arlésienne’)' 공연용 부수음악을 의뢰받아 27개의 관현악곡을 작곡하고 그중 몇 곡을 추려내 모음곡 형식으로 발표했다. 이 모음곡이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키자 이에 자신감을 회복한 비제는 곧바로 오페라 ‘카르멘’ 구상에 들어갔다.



비제 사후, 뒤늦게 인정받게 된 <카르멘>



Poster by Prudent-Louis Leray for the 1875 première   출처 : 위키피디아



1875년(37세) 3월, 파리의 오페라 코믹 극장 무대에 올려진 ‘카르멘’의 초연 역시 반응이 좋지 않았다. 담배공장 여공인 집시 여인이 주인공으로 밀수업자들과 한패, 게다가 순진한 군인을 유혹한 후 파멸시키는 내용으로, 충격적인 줄거리에 외설적이기까지 한 ‘카르멘’을 당시 파리 중산층 중심의 오페라 관객들이 좋은 시각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낙담한 비제는 초연한 지 3개월 후 쇠약해진 심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심장합병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비제 사망 후 ‘카르멘’의 인기는 점차 상승하기 시작했고, 사망한 지 4개월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초연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전 유럽에 ‘카르멘’의 열풍이 퍼져나갔으며, 3년 후인 1878년엔 미국에서도 초연되어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처절한 사랑과 배신의 극적 줄거리에 화려함과 서정성이 함께 어우러진 친숙한 아리아들, 그리고 스페인의 이국적인 춤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카르멘’은 비운의 천재 작곡가가 남기고 간 걸작으로,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로 사랑받고 있다.


오페라 ‘카르멘’ 줄거리와 주요 아리아


(제1막) 19세기 초반 스페인 세비야의 한 담배공장 앞 광장


점심시간이 되자 공장에서 여공들이 몰려나온다. 남자들이 환호성으로 맞이하고 특히 카르멘이 나타나자 남자들이 그녀 주위를 에워싸며 수작을 걸지만, 위병인 하사관 돈 호세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카르멘이 유명한 아리아 ‘하바네라’(사랑은 변덕스러운 새)를 부른 후 돈 호세에게 꽃을 던져 유혹하고 공장으로 돌아간다. 이때 모친의 편지를 들고 온 약혼녀 미카엘라가 찾아오자 그녀와의 사랑을 다짐한 후 돌려보낸다. 잠시 후 공장에서 여공들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주동자인 카르멘이 체포되지만, 그녀에게 홀린 돈 호세는 결국 카르멘의 도주를 돕고 그 죗값으로 며칠 옥살이를 하게 된다.




1875년 피에르 오귀스트 라미의 초연 1막 석판화   출처 : 위키피디아



(제2막) 세비야 거리의 한 주막


장교들, 집시들이 모여 함께 춤을 추고, 카르멘이 ‘집시의 노래’를 흥겹게 부른다. 이어 환호성과 함께 등장한 인기 투우사 에스카밀료가 ‘투우사의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카르멘을 눈여겨본 후 주막을 떠난다. 잠시 후 감옥에서 풀려난 돈 호세가 등장하자 카르멘은 다시금 사랑의 말과 춤으로 그를 유혹하고, 돈 호세는 유명한 ‘꽃노래’(그대가 던진 이 꽃은)를 불러 화답한다. 카르멘과 집시 밀수업자들은 돈 호세에게 부대를 이탈해 자유분방한 삶을 함께하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탈영병이 될 수 없다고 거절하며 부대로 복귀하려 했으나, 때마침 주막으로 들어온 장교와 말다툼 끝에 싸움을 벌이게 되어 결국 밀수업자들과 한패가 되고 만다.


(제3막) 산속의 어두운 밤


밀수업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돈 호세의 카르멘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지만, 그녀의 마음은 돈 호세에게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 어느 날 밤 예전에 주막에서 한번 만난 후 카르멘을 사랑하게 된 투우사 에스카밀료가 밀수업자들의 근거지를 찾아온다. 돈 호세와 마주친 투우사는 카르멘의 마음은 이미 당신에게서 떠났다며 돈 호세를 자극하고 둘은 결투를 벌인다. 카르멘과 밀수업자들이 싸움을 말리자 투우사는 수일 후 열리는 투우에 카르멘과 집시들을 초대한다는 말을 남기고 산에서 내려간다. 잠시 후 돈 호세를 찾아 산에 오른 약혼녀 미카엘라가 나타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한다. 카르멘도 떠나라고 하자 화가 난 돈 호세는 처음에는 하산을 거부하지만 모친이 위독하다는 미카엘라의 말에 결국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산을 떠난다.


(제4막) 세비야 투우장 밖 광장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투우사들이 화려하게 등장하고 이어 에스카밀료가 화려한 옷차림의 카르멘과 함께 나타난다. 에스카밀료가 투우장으로 들어가자 집시 여인들이 카르멘에게 다가와 돈 호세가 주변에 있으니 주의하라고 충고하지만, 그녀는 무시한다. 잠시 후 초라한 모습의 돈 호세가 나타나 애절하게 사랑을 호소하나 카르멘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돈 호세의 처절하리만큼 끈질긴 애원에도 매몰찬 태도로 일관하던 카르멘은 투우장에서 승리의 함성이 울리자 에스카밀료에게 달려간다. 돈 호세가 막아서자 “이따위 것은 돌려드리죠”라며 그에게서 받았던 반지를 내던진다. 배신과 질투에 이성을 잃은 돈 호세는 칼로 카르멘을 찌른 후 “내가 죽였다. 카르멘, 사랑하는 카르멘을” 하고 외친다. 멀리서 투우사의 합창이 울리며 막이 내린다.



♪ 음악 들어보기


‘하바네라(사랑은 변덕스러운 새)’





‘집시의 노래’ 




‘투우사의 노래’ 




‘꽃노래(그대가 던진 이 꽃은)’




오페라 ‘카르멘’ 전곡 (한글 자막) 




유재후 클래식 칼럼니스트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행, 파리 지점장, 경영지원그룹장 등을 역임했다. 은퇴 후 클래식 음악 관련 글쓰기, 강연 등을 하는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LP로 듣는 클래식 : 유재후의 음악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