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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2-04-12

볼탕스키를 보내며



누구에게나 떠나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꼭 가까운 혈육, 친구가 아니라도 삶의 한 곳에 흔적을 지닌 사람과의 이별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온다. 얼마 전, 평생 죽음이라는 주제로 작업해 온 미술가의 작고와 더불어, 그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 그 과정에 함께한 양은진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전한다.



故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월 20일 한국시간으로 저녁 6시. 전시기획을 위한 온라인 회의를 통해서였다. 화면 너머로 검은 재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세계적인 대가의 오라를 품고 있었다. 선한 눈동자와 친절하고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에 저절로 '존경'의 마음을 품었다. 매번 전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숙명이지만 작가와 짧지 않은 미팅을 통해 느낀 볼탕스키라는 사람의 매력은 작품이 주는 감동 이상이었다. 그에게 전시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3층 전시장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촬영해 전송했다. 바닥의 재질, 천정의 구조, 전기 플러그 위치, 벽면의 질감까지 최대한 디테일을 담으려 노력했다. 전시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 추운 겨울, 땀을 뻘뻘 흘리며 본관부터 '이우환공간'을 뛰어다녔다. 그가 한 번도 와보지 않는 공간이지만 마치 체험한 공간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전시사진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사실 나는 큐레이터와 작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해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와의 만남은 내면에 오랫동안 내재하여 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마주하게 했다. 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불안은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 왔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출발, 도착, 그리고 Après(그 후)로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살고 죽는다는 것은 비행기를 타기 전과 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비행기 타기 전 여행을 준비하는 분주한 시간이 삶이라면 비행기 좌석에 앉았을 때가 죽음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소 허무주의적인 맥락으로도 들리기도 했지만 '삶과 죽음을 그렇게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교훈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래서 볼탕스키를 만난 후, 죽음을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도 작가의 작품을 보며 많은 관객이 위로와 공감을 표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러다 전시개막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2021년 7월 14일, 작가의 유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애도 보다는 전시 계약, 작품 저작권, 작품 설치 등을 비롯한 해결해야 하는 여러 문제들이 먼저 떠올랐다. 슬픔은 전시 개막 준비를 다 마치고 난 후 비로소 찾아왔다. 볼탕스키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 중에 불교의 철학을 좋아한다고 말한 사실이 떠올라, 전시개막 이틀 전 범어사를 찾아 기도를 올렸다. 전시 설치를 위해 방문한 프랑스 현지의 스태프들도 함께 눈물로 그를 보냈다.



전시사진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국내 최대의 규모로 진행된 작가의 전시였고, 전시 진행 도중 작가의 죽음을 맞이한 것도 평생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던 작가이기에 더 큰 관심을 받았다. BTS의 RM을 비롯한 국내 저명인사의 방문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전시설명을 위해 평일과 주말이 없을 정도로 전시장을 지켰다. 하지만 한 번도 피곤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코로나 상황으로 전시 관람 인원을 제한했지만,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시가 진행되었던 지난 5개월은 참으로 행복했다. 많은 관객에게 울림을 주는 전시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작품 안에 서 있으면 볼탕스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온라인을 통해서지만 전시 진행을 위해 직접 소통하며 함께했기에, 작품 속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밥을 먹다가도 울컥 눈물이 나곤 했다. 곧 있으면 작가의 작업을 프랑스로 모두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별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전시에 향해 쏟아진 관객의 큰 사랑을 그에게 전할 길이 없어 다시 범어사를 찾았다. 7일 기도를 올리고, 볼탕스키 이름의 등을 달았다. 남아있는 사람이 떠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를 생각하며 하고 싶은 말을 기도로 전했다.


"당신 생애 마지막 순간에 함께 전시를 할 수 있어 더 없이 감사하며, 평생 당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양은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22년 3월 24일 막을 내린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전을 기획했다. 이 전시는 '이우환과 친구들' 시리즈로 안토니 곰리, 빌 비올라 전에 이은 세 번째 전시였다. 본래 회고전으로 기획되었으나, 준비 중 작가가 사망하면서 세계 최초 유고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