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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에세이
2022-03-25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



웰에이징과 웰다잉은 누구에게나 제법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이제는 배움을 넘어 실천해야 할 때, 삶의 모든 것이 그렇듯 행동하는 것은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아름다운 나이 듦을 실현하고 있는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의 글을 전한다.



종종 ‘아름다운 늙음’ 이른바 ‘웰에이징’의 기준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건강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비교적 간단하다. 여기에 경제력이 보태진다면 그야말로 축복받는 노년의 삶일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삶이란 게 그런 일률적인 잣대로만 평가할 게 못된다. 건강과 경제력 이외에도 ‘알파’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면 그보다 좋은 ‘알파’가 없겠다. 솔직히 나는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은 못된다. 삶에는 늘 ‘찬성과 반대’의 ‘프로스 앤 콘스(pros and cons)’가 존재한다고 하지 않는가.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지지해주는 사람(프로스)이 있는가 하면 나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쪽(콘스)도 있기 마련이다. 모든 이들로부터 ‘프로스’를 받기란, 글쎄 성인군자라면 모를까. 최소한 나를 ‘프로스’해 주는 사람들이 2022년 3월 현재 1,968명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 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소망 소사이어티’를 통해 시신 기증을 약속하신 분들의 숫자다.



소망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지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소망 웰에이징 어워드>. 사진제공:소망소사이어티


소망 소사이어티는 올해 발족 15주년을 맞는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미주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비영리 봉사기관이다. 쉽게 말해 ‘죽음준비’를 홍보하고 교육하는 단체다. 소망 소사이어티는 시신 기증 캠페인을 펼치지 않는다. 다만 이 프로그램을 소개할 뿐이다. 그런데도 호응이 정말 대단하다. 시신 기증을 받은 대학병원 측도 놀라워한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증을 약속한 경우는 일찍이 없다면서 말이다.

‘쟈니 윤’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 분은 1980~90년대 대한민국 ‘토크쇼의 지존’으로 명성을 얻었던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사이이지만, 쟈니 윤은 세상을 떠나기 1년여 전 소망 소사이어티에 시신 기증을 서약했다. 그 분의 시신은 대학병원(UC Irvine)에 옮겨져 의학발전을 위해 작은 벽돌 하나를 쌓았다.


나도 이미 오래전 시신기증서에 서명을 해놨다. 소망 소사이어티에 기증을 약속한 분들은 최소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그 분들께 진한 인류애를 느낀다. ‘웰에이징’ 곧, 아름답게 늙어가다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분들이 아닌가. 한 번은 시신 기증을 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초 ‘자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시신 기증을 했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거의 절반 가량이 기증 이유를 ‘이 사회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미국이 고마워서’라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 나라에 기여한 것도 거의 없는데 의식주를 정부가 해결해 주니 고마운 나머지 시신을 기증해 보답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안과의사이신 故공병우 박사님의 생전 말씀이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만한 장기와 시신은 모두 병원에 기증하라. 죽어서 한 평의 땅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게 낫다.”



소망소사이어티는 유언장 쓰기 등 죽음 준비와 관련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진제공:소망소사이어티


봉사자들 역시 ‘웰에이징’의 또다른 표본이다. 소망소사이어티는 치매교실을 두 군데서 운영한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을 위한 교실이다. 1대 1 교육을 원칙으로, 우리는 그 분들을 절대 환자라 부르지 않고, ‘학생’이라는 호칭을 쓴다. 봉사자 없이는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고, 치매교실 봉사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 그런데도 일편단심,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내는 봉사자 분들이 거의 70명에 이른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분들이지만 결코 힘들어 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의 ‘학생’ 중에는 미국 뉴스방송 CNN의 유명 앵커 어머니도 계시는데, 가끔 전화로 어머니의 상태를 물으며 ‘돕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되뇌곤 한다. 그는 멀리 떨어진 CNN본부(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매일 세계뉴스와 씨름하고 있다. 그런 탓에 어머니를 케어할 수 없어 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봉사자들을 볼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그 분들이야말로 내게는 ‘웰에이징’의 진정한 표본이다.



유분자 이사장의 소망이 담긴 차드 우물파기 캠페인은 곧 500번째 우물을 만들게 된다. 사진제공:소망소사이어티


또, 물질적으로 ‘웰에이징’을 실천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아프리카의 최빈국 차드에 우물파기(생명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소망소사이어티에 지지를 보내주시는 분들이다. 오염된 강물이나 호숫물을 마신 탓에 숨지는 원주민들에게 우물은 생명수나 마찬가지다. 그 뿐이 아니다. 우물 옆에 학교도 세우고 있다. ‘물고기를 던져주기 보다는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우물 하나를 파는 데는 3,500 달러(약 400만원)가 든다. 올해 4월 쯤이면 500번째 우물이 파진다. 우리 소망소사이어티에겐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나는 이제 어느덧 아흔을 향해 달리는 나이가 됐다. 살아오면서 웰에이징과 웰다잉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답게 나이들어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법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It’s not how old you are, it’s how you are old.’


당신이 몇 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어떻게 늙어왔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일 터다. ‘웰에이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독자님들은 ‘어떻게 늙어왔는지, 또 어떻게 늙어가고 싶은지’ 한번 쯤 성찰해 보시기 바란다.



* 소망소사이어티 홈페이지 https://kr.somangsociety.org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

이민 1세대로서 한국재외한인간호협회 초대 회장과 대한적십자사 초대 간호사업국장을 지냈고, LA한인가정상담소 개설 등 한인사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07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봉사단체 소망소사이어티의 창립 이사장으로 죽음 준비에 관한 사회복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국민훈장인 목련장을 비롯해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유한재단 유재라 봉사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