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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9

개인 소장품 들여다보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지난해 하반기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에 이어 올해는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THREE> 오는 8월 22일까지 진행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지닌 문화예술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여겨 볼만한 작품 다섯 개를 소개한다.


선조로부터 예술 컬렉션을 이어온 기업이나 개인은 반드시 그 컬렉션의 완성을 미술관으로 마무리하고 싶어할 것이다. 수세대에 걸친 문화예술의 가풍을 한눈에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술관’이란 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보급 컬렉션을 자랑하는 간송미술관을 비롯해 김창일 회장의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아라리오뮤지엄, 전필립 회장 부부의 아트 컬렉션이 있는 파라다이스시티 등 전국 방방곡곡 기업과 개인들이 운영하는 미술관 및 작품을 감상할 공간들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을 꼽으라면 삼성의 리움미술관이다. 고미술품부터 현대미술품까지 단연 압도적인 아트 컬렉션을 자랑하는 리움미술관은 해외 주요 귀빈들이 내한했을 때 잊지 않고 들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움미술관이 개점휴업상태이던 2018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용산 신사옥에 오픈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리움의 뒤를 이어 현재까지 서경배 회장의 소장품 5000여 점의 일부를 관람할 수 있는 소장품 전과 현대미술거장으로 불리는 미국의 개념주의 작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등을 열며 국내외 아트 애호가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포스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개관 이후 세 번째 소장품 특별전. 전시 전경들.


서경배 회장은 과거 <아트뉴스> 선정 세계 200대 컬렉터 안에 손꼽히기도 했던 아트 컬렉터. 경영인이 되지 않았다면 미술 평론가가 됐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아트를 사랑하는 기업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창업주인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아트 컬렉션에 힘쓸 뿐더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한국실의 여성관 신축을 위한 기부와 같이 국내외 예술 후원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전시는 오픈 때마다 세간의 관심을 불러모으지만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시는 용산에서의 신축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열린 바바라 크루거의 개인전 이었다. 1980년대부터 2019년까지 선보인 그녀의 주요 작품뿐 아니라 서울 전시를 기념해 미술관 공간에 맞춰 새롭게 작업한 한글 텍스트 작업은 한동안 많은 이들의 SNS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코로나로 인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소장품전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난해 고미술 소장품 전에 이어 올해 새롭게 시작한 전시가 바로 현대미술 소장품 전이다.



로셀 파인스타인, 러브 바이브, 1999~2014, 캔버스에 유채, 각 188.0x188.0cm



조셉 코수스, 다섯 개의 색, 다섯 개의 형용사, 1965, 네온, 10.2x467.4cm


2019년과 2020년 열린 두 번의 소장품 전에서 미술관은 1979년 태평양박물관 개관 이후 역사를 함께 한 소장품을 소개했는데, 올해는 기존 전시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1960년대 개념미술부터 2020년 새롭게 제작된 신작까지 포괄한 주요 현대미술 소장품을 소개한 덕분에 관람객은 동시대 미술의 현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이 전시에서 소개한 작가들만 살펴봐도 현대미술의 범주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국내외 작가 40여 명이 참가한 이번 특별전에서 꼭 확인해야 할 작품 5개를 소개한다.


첫 번째로는 회화, 조각, 콜라주, 비디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미국 작가 스털링 루비의 <창문. 솜사탕.>(2019)이다. 스털링 루비는 특히 콜라주 형식을 자주 사용해 사회적 이슈를 전하는 작가. 1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보이는 이 작품은 윈도우의 줄임말인 ‘WIDW’ 콜라주 연작 중 하나로 작품 전체를 두른 검은색 프레임과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판지 조각이 커다란 창문을 만들고, 화면 양쪽으로 분홍색 노랑색, 하늘색과 청록색을 칠해 화면에 텍스처를 더했다. 그 위에 작가의 작업실에서 나온 폐기물 파편을 붙여 화면에 혼란을 더했는데, 재료와 기법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높이 3.3m, 폭 2.5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작가가 현시대를 생각했을 때 떠올려지는 창문의 모습이라고 밝혔는데, 이 창을 통해 작가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스털링 루비, 창문. 솜사탕.,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판지, 표백한 천, 고무밴드, 320.7x250.1x8.3cm


2전시실에는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막 회고전을 오픈한 국내 대표 설치미술가인 이불의 조각 작품 두 점이 설치되어 있다. 이불은 20세기 문화와 사회, 역사의식 등에 관해 철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조각 및 설치, 퍼포먼스, 회화, 드로잉, 영상 등을 선보이는 작가. 작품을 통해 여성의 억압된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여전사라고 불리는데, 이번 전시엔 작가의 초기작인 ‘사이보그 W7’과 2010년 작인 ‘스턴바우. No.29’가 나란히 걸려 작가의 전과 후를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별자리’라는 뜻을 가진 ‘스턴바우’는 바이마르 시대 독일 건축가인 브루노 타우트가 제안한 건축 구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당시 브루노 타우트는 무질서가 만연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유리로 만들어진 도시를 제안했는데 이불 작가는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스턴바우 No.29’를 제작했다고 한다. 때문에 작품 앞에서 관객들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이불, 스턴바우 No.29, 2010, 혼합매체, 91.0x74.0x180.0cm


전시장에서 꼭 눈여겨봤으면 하는 세 번째 작품과 네 번째 작품은 6전시실에 함께 설치된 아담 펜들턴의 ‘나의 구성요소들’(2019)와 피타 코인의 ‘무제 #1243(단어의 비밀스러운 삶)’(2007)이다. 30대 중반의 아담펜들턴은 뉴욕에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주제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업하는 작가. 역사적 사진이나 본인이 소장하는 책의 페이지, 아트리카 조각과 마스트 이미지 위에 직접 글을 쓰고 기하학적인 도형을 겹쳐 그려 추상적이면서도 그래피티같은 느낌의 드로잉을 추구한다. 이번에 전시한 ‘나의 구성요소들’은 너비 총 8m에 달하는 초대형작품. 총 45피스가 각자 다른 메시지의 그림으로 배열되어 있어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같은 전시실 한켠 천장에 매달린 피타 코인의 ‘무제 #1234’는 아담펜들턴의 작품과 달리 매우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는 물건, 예를 들면 왁스나 박제된 동물, 모발 등을 새로운 형태의 조각으로 창작하는 피타 코인의 이 작품은 <용서받지 못한> 시리즈 중 하나로 낯익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왁스에 담근 조화와 나뭇가지를 쌓아 올린 이 작업은 질서와 혼돈, 빛과 어둠, 부패와 재생과 같은 상반된 가치를 담고 있다고.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꽃다발과 거기에서 떨어진 꽃 부스러기가 만들어낸 전체적인 조형미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아담 펜들턴, 나의 구성요소들, 2019, 마일라 필름에 실크스크린, 각 96.5x73.7cm, 총 552.0x798.8cm



피타 코인, 무제 #1243(단어의 비밀스러운 삶), 2007, 혼합매체, 233.7x95.3x109.2cm


마지막 작품은 바로 1960년부터 지금까지 50년간 ‘빛’을 다뤄온 작가 메리 코스의 ‘무제(내면의 흰색 띠들’(2003)이다. 메리코스는 작업 초기에 추상회화에 몰두했는데 어느 날 빛의 진동에 끌려 빛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미니멀한 회화에 천착하고 있다. 특히 유리구슬과 금속, 세라믹 등을 아크릴 물감에 섞어 반사효과로 빛나는 캔버스를 완성하는 것이 메리 코스 작품의 특징.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빛의 굴절도 달라져 다양한 질감을 자아낸다. 이 작품은 너비 6m 이상의 대작으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 역시 그녀를 상징하는 화이트 작업이다. 그녀는 화이트 물감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인간이 지닌 천상의 오묘함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시작해 점차 조금씩 무언가를 덜어내는 과정에 위치한 작품이니만큼 그 부분에 집중해서 감상하길 추천한다.



메리 코스, 무제(내면의 흰색 띠들, 2003, 캔버스에 유리 마이크로스피어가 혼합된 아크릴릭, 243.8x609.6cm


사진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김이신 <아트 나우> 편집장

<아트 나우>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