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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격동하는 청춘들의 봄.봄.봄 <싱스트리트>



매년 이 계절을 격하게 사랑하는 이유. 마치 돌아오지 않을 지난 날을 대신하듯 고단한 추위 끝에 꼬박꼬박 찾아와주는 것만으로 적잖은 위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싱스트리트>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값진 봄을 보내는 청춘들을 만날 수 있다.



<싱스트리트>는 가정 문제로 전학을 가게 된 코너(페리다 윌시 필로)가 모델 지망생 라피나(루시 보인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젊은 날의 사랑, 치기어린 도전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방황의 시기를 통과해야만 하는 청춘들의 혼돈 또한 담아낸다. 봄과 같은 설렘을 입은 청춘,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음악 이야기로 3월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누군가의 말처럼 청춘은 그야말로 ‘봄’이지 않은가!



영화 <싱스트리트>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존 카니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 그리고 80년대 팝의 시기.

<싱스트리트>의 감독 존 카니는 이미 음악영화로 대중에게 익숙하다. 첫 음악영화 <원스>를 비롯해, 그 이후 제작한 <비긴어게인>이 다양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만 실 관람객 약 350만을 기록했고, ‘Falling slowly’, ‘Lost star’같은 주제곡 또한 큰 인기몰이를 하며 존 카니는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영화 감독이 되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10대 청소년들의 성장담을 그린 <싱스트리트>는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다. 감독은 자신이 그 당시 말 한 번 걸어보지 못했던 당돌한 소녀를 떠올렸고, 이름도 모르지만 짝사랑의 열정만은 진지했던 그 때의 감정을 시작으로 시나리오에 착수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감독이 80년대 브리티쉬 팝에 심취했던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그 시기에 영향을 받은 음악을 고스란히 영화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는 영화의 스토리와 더불어 <싱스트리트>가 가진 가장 큰 흥미요소가 된다. 멜로디 라인과 리듬 비트를 부각시켜키며 일명 브리티쉬 팝의 시초라고 불리는 ‘듀란듀란’의 경쾌한 곡들, 80년대 본격적으로 등장한 음악전문채널 MTV, 극 중 라피나에게 불러주는 노르웨이 출신 그룹 ‘A-HA’의 노래 는 70년대 락에서 80년대 팝으로 음악시장의 변화와 동시에 기성세대에 대한 반기의 시작, 혹은 커다란 차원에서 도래한 시대 변화를 보여준다. 이를 의미하는 설정은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라피나가 다른 남자친구와 가버리는 모습을 보고 풀 죽은 코너에게 그의 형 브랜든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저 남자는 ‘제네시스’의 노래를 듣고 있잖아. 제네시스 같은 구닥다리 노래를 좋아한다면 분명 머지않아 여자에게 차이게 될 거야” *‘제네시스’는 필 콜린스를 앞세운 그룹으로, ‘핑크 플로이드’와 더불어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락을 대표하는 그룹이다.



이 영화는 존카니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해 시대상을 실감나게 반영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80년대의 더블린, 기성세대에 대한 반기

이렇듯 영화는 변화와 새로움의 상징이 되었던 80년대 팝 음악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영화의 무대가 되는 1985년 더블린은 실상 청년실업의 시기로도 불리는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불황으로 인해 꿈과 일자리를 찾기 위한 젊은이들이 런던으로 대거 이동하던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 영국은 아일랜드 청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이상이자 또 다른 출구였다.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존 카니 감독은 당대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출구가 바로 음악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우울한 더블린과 화려한 팝음악의 이질적인 느낌을 한 공간에 몰아넣음으로써, 이른바 회색 빛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는 초반부터 '아일랜드에 없는 희망을 찾아 런던으로 떠나는 것이다'라고 방송하는 TV뉴스가 듣기 싫다는 듯, 채널을 돌려 화려하고 스피디 한 ‘듀란듀란’ 뮤직비디오에 시선을 집중하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총천연색의 생명력이 생기를 잃은 더블린의 모습과 마구 뒤섞이는 듯 진기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것은 이후 코너와 친구들이 등장하며 무기력함과 에너지, 혹은 수긍과 저항, 어두운 도시와 빛나는 청춘의 대비로 확장된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비비드 한 색채, 아날로그적인 분위기, 화려한 패션 등을 통해 최대한 8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재현했고, 화려한 조명이나 효과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도록 핸드 헬드 기법을 사용한다거나, 오래된 더블린의 도시를 있는 그대로 배경으로 사용하여 마치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음악과 더불어 영화에 큰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영화 속에서 당시 청춘의 유일한 탈출구는 음악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싱스트리트>는 그 시대 젊은이들이 느꼈을 구세대의 현실 안주에 대한 답답함이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달리고자 하는 열정을 담아낸 영화다. 극 중 등장하는 폭력적인 학교관계자나 코너의 아버지는 과거의 것을 답습하고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척하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일명 '미래'를 외치는 코너와 그의 형 브랜든과 매번 부딪히게 된다. 이는 영화에서 중요 소재로 삼고 있는 '과거의 것'과 '미래의 것'의 충돌을 의미한다. 암울하게 정체되어 있던 당시 아일랜드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길 바란 감독의 내면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코너의 아버지는 라이브를 하지 않는 듀란듀란의 뮤직비디오를 힐난하며 '이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망한 것이다. 여전히 최고는 비틀즈이다' 라며 핀잔을 주고, 학교관계자는 이유 불문하고 학생들에게 오직 '검은 구두'만 고집할 뿐이다. 결국 정체된 과거에 멈춘 기성세대들로 의미되는 이들에게 반기를 든 코너는 검은 신발 고집하는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며 맨발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그때 "뜨거운 태양아래 바위를 부쉈지. 법에 맞서 싸웠지만 법이 이겼네"라는 노래가사가 코너의 주위를 감싸며 격동하는 청춘들을 위로한다.  



청춘은 지나가지만, 음악처럼 곁에 머무는 위로는 많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음악이 함께 함으로.

가만히 살펴보면 싱스트리트 멤버들은 대부분 저마다의 상처 혹은 보이지 않는 편견의 시선을 안고 살아간다. 이혼 위기의 부모를 둔 코너, 부모와 함께 할 수 없는 라피나, 알코올 중독 아버지가 있는 에이먼, 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배리,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뒤집어 쓰고 있거나 동성애자로 낙인 찍힌 멤버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음악 통해 자아와 열정을 확인하고 헝클어졌던 관계를 치유한다. 영화를 보고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코너가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 마다 치열하게 곡을 만들던 모습은 여전히 눈에 선하다. 조금은 부족한 듯 느껴지는 이 영화의 서사에 힘을 보태주는 것은 천 마디 대사보다 아름다운 곡들이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알고 있다. 여전히 상처뿐인 청춘의 자리에는 무엇보다 따스한 위로로 감싸는 음악이 있음을.  

장다나 영화 칼럼니스트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CJ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와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의 프로그래머 역임,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교양학부 외래교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와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