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의031-645-9191

에덴 미디어

컬처
2026-04-27

이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⑳

⑳ 라울 뒤피, '도빌의 경마장'(As Corridas em Deauville) 상파울루 미술관(MASP)


필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미술관과 유명 작품들을 가르칠 때였다. 한 학생이 브라질에 여행을 다녀와서 미술관에서 사 온 그림 카드와 미술관 포스트카드를 선물로 준 적이 있다.


당시 많은 학생들이 외국에 교환학생이나 여행을 다녀오면 수업 시간에 함께 토론했던 미술관이나 작품들의 그림카드를 기념 선물로 전해주곤 했는데 브라질 상파올루의 MASP 미술관의 내부 사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가져온 그림 카드 중 라울 뒤피의 작품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한참 동안 연구실 벽에 붙여두고 언젠간 내가 꼭 직접 가서 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 내부    출처 :  상파울루 미술관(MASP)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가보지를 못했다. 브라질로 여행 갈 일이 쉽지 않고 비행기 환승하며 30시간 이상이 걸린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사랑에 빠진 뒤에 이런 글을 써야 하지만 그때가 과연 언제일지 몰라서 먼저 공부한 내용을 나누려 한다.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    출처 : Roger-Viollet / Roger-Viollet


브라질 상파울루의 중심가 파울리스타 대로를 걷다가 느닷없이 붉은색 기둥사이로 두둥 떠있는 초현실적인 건물을 보게 된다고 한다. 이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서 네 개의 선명한 붉은 기둥들이 공중에 거대한 유리 상자를 들어 올리고 있는 형태로 남반구 예술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상파울루 미술관(MASP)인 것이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    출처 : wikipedia 


이탈리아 출신 여성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는 "예술은 공기처럼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미술관 아래 광장을 시민들에게 온전히 내어주기 위해 건물을 공중에 띄웠다고 한다. 중력을 거부하고 떠 있는 이 건물처럼, 육체의 고통이라는 중력을 이겨내고 탁월한 예술적 도약을 꿈꿨던 화가, 바로 라울 뒤피의 ‘도빌의 경마장’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도빌의 예시장    출처 : Centre Pompidou, MNAM-CCI/Jacqueline Hyde/Dist. RMN-GP


라울 뒤피


화면 가득 쏟아지는 눈부신 '뒤피 블루'와 경쾌한 말들의 움직임 때문에 자동으로 콧노래 한 소절 정도는 문제없다. 뒤피는 1877년 프랑스 르아브르의 가난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14살 때부터 커피 수입 회사에서 일해야만 할 정도로 가정이 상당히 어려웠으나 밤마다 미술 학교를 다니며 예술을 향한 갈증을 채웠다. 초기에는 인상주의에 심취했지만, 1905년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충격적으로 만나게 된 후부터 강렬한 색채의 '야수파'에 가담하며 자신만의 색을 찾기 시작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출처 : Centre Pompidou, MNAM-CCI/Bertrand Prevost/Dist. RMN-GP


특히 그는 당시 가장 유명했던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와 협업하며 1,000개가 넘는 직물 패턴을 디자인했는데, 당시의 경험들은 그의 회화에 장식적인 면과 가벼운 리듬을 부여했다. 이때부터 그의 색감에 천재성이 나타난 것 같다. 뒤피의 작품들을 보자마자 필자의 연구실이나 집의 서재 벽에 온통 뒤피의 작품들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게 된 이유가 바로 뒤피 불루, 그리고 날아갈 듯한 녹색의 흥겨움이다.


La Perse 드레스 원단 디자인과 드레스    출처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 연구소 웹사이트


뒤피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이 그가 예술적 전성기를 누리던 50대 후반에 찾아왔다. 심각한 류마티스 관절염이 발병했다. 손가락은 서서히 굳어갔고, 붓을 쥐는 것조차 비명이 나올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내 눈은 태어날 때부터 추한 것들을 지우도록 되어 있다."라며 굳어버린 손에 붓을 묶고서 캔버스 위에 삶의 기쁨을 쏟아부었다. 이 부분은 르누아르의 후반 인생의 모습과 완전히 같아 보인다.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 출처 : 팔복예술공장


그가 창안한 '해리(Dissociation) 기법' 즉, 형태를 그리는 검은 선과 배경의 색 면을 일치시키지 않고 따로 노는 듯하게 배치하는 방식은 어쩌면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었던 그의 바람이었을 것 같다. ‘도빌의 경마장’ 속 경주마들이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갈 듯 역동적인 이유는 그 선들이 화가의 굳은 관절이 아닌 그의 머릿속 상상력에서 직접 흘러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서커스(1935)    출처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뒤피는 말년에 신약 치료를 위해 미국 보스턴으로 갔는데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붓을 들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인생의 두 번째 봄"이라 불렀다고 한다. MASP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바로 그 '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파란색은 모든 단계에서 그 고유의 개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색"이라며 푸른색에 무척이나 집착했다. 그의 푸른색은 전혀 차갑지가 않다. 오히려 따뜻하고 투명하기만 하다.


관절염으로 인해 세밀한 묘사가 힘들어지자, 그는 더 과감하고 단순한 붓질로 대상의 본질을 꿰뚫었다. ‘도빌의 경마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의 근육이나 관객의 표정은 전혀 세밀하지 않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축제의 분위기'만큼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 생생하게 나타난다.



애스컷의 경마장(1930)    출처 : christies.com


상파울루 미술관 (MASP)


MASP의 기둥은 처음부터 붉은색은 아니었다. 1968년 개관 당시에는 세련된 회색의 노출 콘크리트 상태였다. 기둥이 지금의 선명한 '소방차 레드(Fire-fighter red)' 옷을 입게 된 것은 1990년대 건물 유지 보수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보호하기 위한 페인트 제품을 기증받았을 때, 리나 보 바르디가 직접 이 강렬한 빨간색을 선택했다고 한다.


MASP의 내부는 벽이나 기둥이 없다. 모든 작품은 바닥에서 솟아오른 콘크리트 블록 위, 투명한 유리판(크리스털 이젤)에 고정되어 허공에 떠 있다. 이 부분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감이 오지 않을 터인데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되고 크게 아… 하고 감탄할 것이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 내부    출처 : 부산일보 이상훈 기자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 없이 작품 사이를 산책하며 예술가들과 직접 눈을 맞춘다. 이 투명한 숲속에서 뒤피의 작품은 마치 허공에 그려진 일기장처럼 보인다. 유리판 너머로 상파울루의 현대적인 도심 풍경이 투영되고, 관람객들의 움직임이 그림 속 경마장의 풍경과 겹쳐진다. "예술은 전시장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건축가 보 바르디의 철학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미술관이다. 


너무나도 가보고는 싶은데 북미나 유럽이 아닌 남미의 브라질 상파울루… 언젠가 나도 모르게 이 미술관 앞에서 표를 사고 있는 내 모습을 집요하게 상상해 본다.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 같다. 매주 화요일은 무료입장인데 적어도 개장 전 30분 전에 가도 상상보다는 훨씬 긴 줄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 공식 홈페이지 →



강두필 교수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했다. Paris 소재 CLAP35 Production 대표 감독(CF, Documentary)이며, 저서로는 좋은 광고의 10가지 원칙(시공아트), 아빠와 떠나는 유럽 미술여행(아트북스), 모두가 그녀를 따라 한다(다산북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다산북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인의 CF 감독(살림출판사) 등이 있다. 전 세계 미술관 꼼꼼하게 찾아다니기와 매일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해 두는 것이 취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