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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그곳에 가면 #6 마을, 예수님



보통 마을village이나 동네town라고 하면 읍면동 같은 행정구역 단위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는 거주지home가 모여 있는, 다소 관념적인 장소를 의미한다. 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마을은 특정 장면으로 각인된 경우가 많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골목, 담장 너머 들려 오던 옆집 아기의 울음소리, 학교 가는 길 문방구에서 쌈짓돈으로 사 먹던 설탕과자처럼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마을은 일상을 나누는 이웃 공동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도행전 2장 42~47절 말씀에는 초대 교회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다. 함께 살며 서로의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자의 필요에 따라 나눠 줬다. 또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고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미했다. 마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믿음의 공동체이다. 물론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성도들이 모두 당시와 같이 생활할 수는 없지만, 서로 돌보고, 일상을 나누며, 믿음을 함께 키우는 교회 공동체 사례가 늘고 있어 몇몇을 소개해 본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위치한 ‘생명의 빛 예수마을’은 사역에서 은퇴한 선교사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남서울은혜교회 성도들이 주축이 돼 여러 후원자들이 정성을 모아 완공한 이 곳은 은퇴 선교사들의 거주 공간뿐 아니라,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섬기기 위한 공동 주거 시설도 갖추고 있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 전경 ⓒ생명의 빛 예수마을

이곳의 주된 목적은 은퇴 선교사들이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급자족 및 인근 다문화 가정 사역 활동을 하는 등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것. 또 후배 선교사들을 위한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은퇴자들이 그간 쌓은 경험과 지혜를 체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또 해외 선교지로 나간 선교사들을 위해 중보하며 후원하고, 그들에게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긴급구난센터 역할도 한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 예배당 ⓒ생명의 빛 예수마을

이 은퇴 선교사 마을의 중심은 예배당이다. 약 100평 규모에 300석 정도 좌석을 갖춘 ‘생명의 빛 예배당’은 러시아산 붉은 소나무 소재로 되어 있는데, 흡사 로마 원형경기장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천장 돔을 결합한 듯한 구조가 인상적이다. 독창적인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웅장함에 외부 교인과 일반 관람객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예배당 건축에 얽힌 뒷이야기도 화제다. 한 목재 사업가가 자신을 위해 일생을 기도하던 어머니를 기려 러시아산 목재를 교회에 기증하게 되고, 담임 목사와 부친의 인연으로 예배당 설계를 맡게 된 신형철 프랑스 그르노블대 교수가 3년간 수천 장의 도면을 그리며 해외 구조업체와 협업해 완성했다. 실제 이 예배당에는 바닥과 연결한 193개의 소나무가 수직으로 자리 잡고 있고, 641개의 소나무가 공중에서 연결되어 천장 돔을 이뤄냈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을 장식하고 있는 소나무 ⓒ생명의 빛 예수마을

예배당 한가운데에는 둥근 수조가 있고, 그 가운데 철제 십자가를 세웠다. 폴리카보네이트 외관 속에 자리 잡은 목조 예배당의 천장 사이로 빛이 쏟아지는 모습은 마치 하늘과 연결된 지성소처럼 장엄함을 뿜어낸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 예배당의 십자가 ⓒ생명의 빛 예수마을

한편의 예술 작품 같은 이 건축물은 주일 11시 대 예배가 열리며, 마을 거주자들을 위한 침묵 기도 성막으로도 활용된다. 건축가는 이 예배당을 ‘빛의 중력’이라고 이름 지었다. 빛은 무게가 없기에 중력과 연결되지 않지만, 말씀이 뿌리를 내려 사람을 성장시키듯 빛이 키운 나무가 하나로 어우러져 예배당을 완성해 깊은 감동을 준다는 뜻이다. 덕분에 이곳은 은퇴 후의 두 번째 삶을 보내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따뜻한 생활의 공간이자 영적 공간이 되고 있다.

생명의 빛 예수마을 겟세마네 동산 ⓒ생명의 빛 예수마을

모새골 공동체교회
‘모두가 새로워지는 골짜기’라는 의미를 가진 모새골 공동체 교회는 경기도 양평의 어느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 나라 가족 세우기’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예배와 생활을 접목한 영성공동체를 목표로 하는 이곳은 2003년 1월 오십여 명의 발기인이 뜻을 모아 출범했다. 영성 훈련을 돕는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2005년 예배당을 건축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매년 평신도와 청년, 목회자 대상의 영성학교를 열어 영적 여정을 제공해 왔고, 2017년에는 모새골 공동체와 모새골 교회가 모새골공동체교회로 하나가 되었다. 즉 영성학교와 생활공동체 역할을 겸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새골 공동체교회 입구 ⓒ모새골공동체교회

모새골 영성학교는 경건 생활을 훈련하는 여정이다. 참여 기간 동안 말씀 묵상과 기도,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고 영성훈련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다. 일과는 노동과 묵상이 주가 된다. 2박 3일 또는 3박 4일의 과정으로 운영되는 ‘일상’이라는 프로그램의 경우, 해당 기간동안 모새골에서 머물면서 공동체의 주간 일상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모새골 주민과 식탁 교제를 나누고, 쉼을 통해 힘을 얻고, 다시 참가자의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모새골 영성마을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삶을 나누는 ‘펠로우’ 과정도 있다. 목회자, 신학생, 평신도 등이 참여할 수 있는데, 펠로우가 되면 공동체 운영진의 일원으로 일과의 업무에 참여할 수 있다. 안수받은 목회자가 일정 기간 동안 공동체에 참가하여 공동체를 체험하는 과정으로도 활용된다.

모새골 공동체 교회 채플실 ⓒ모새골공동체교회

모새골은 말 그대로 골짜기에 위치한 하나의 마을처럼 이뤄져 있다. 도착하게 되면 가장 먼저 인포메이션 데스크인 ‘섬김의 집’을 들러 입소 카드를 작성해야 하고, 머무를 숙소를 배정받는다. 일상생활 동안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채플실’, 자연을 따라 걸으며 묵상하는 ‘묵상 동산’, 함께 식사하는 공간 ‘만나홀’ 등 다양한 목적의 공간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정원의 관리를 맡은 하나님 나라의 정원사입니다.”

모새골공동체교회는 기도원이나 수련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자연 속에서 영적 훈련을 하는 영성 공동체라는 개념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가꾸는 순례자의 여정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예배와 소그룹 모임, 교회 학교 등을 운영하는 일반적인 교회의 역할도 당연히 병행하고 있다.

모새골 공동체 교회 묵상공원 ⓒ모새골공동체교회

하양 무학로교회
마을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사회와 어우러져 평화의 공동체를 이룬 경우도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에 있는 무학로교회가 그 주인공. 교회의 새 예배당은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담임 목사는 1980년대에 지은 좁고 오래된 예배당을 보완하기 위해 성도들과 모은 헌금 7000만 원을 들고 건축가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흔쾌히 이를 허락한 건축가가 15평이지만 기능적·심미적으로 모두 완성도 높은 예배당을 탄생시켰다.


하양 무학로교회 외관 ⓒ김종오

무학로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옛 예배당과 교회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는 한옥, 그리고 새 예배당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각 건물의 면적이 크지 않기에 건축가는 각 공간이 완결성을 갖추는 동시에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도록 고려했다. 벽돌로 이뤄진 새 예배당의 경우, 50명 성도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규모다. 작은 예배당이지만 하나하나에 성경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단상이 없는 강대상, 기도로 예배를 준비할 수 있는 설교자 공간, 천정의 틈으로 내려오는 영감 가득한 빛, 하늘로 뚫려 있는 야외 기도실 등 건축비를 최소화하면서도 영성을 높일 수 있는 설계와 재료 선택이 눈에 띈다.


하양 무학로교회 예배당 ⓒ김종오

이 예배당이 화제가 된 또 다른 이유는 타 종교의 인사까지 교회 증축에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는 데에 있다. 평소 교류가 없었다면, 절대 쉽지 않았을 일. 지역사회에서 화합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던 교회의 역할이 인정을 받은 셈이다. 실제로 2019년 6월 열린 새 예배당 봉헌 감사 예배에는 이 교회 성도뿐 아니라 건축 과정에 힘을 보탰던 지역 주민들과 타 종교 인사까지 다수 참여했다.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교회를 보러 전국에서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교회가 평화와 화합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정지연 <브리크brique> 편집장

브리크컴퍼니 대표. 공간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브리크brique>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정치학사를, 고려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를 각각 취득했다. 방송 구성작가, 신문기자, 뉴미디어연구소장 등을 거쳐 2017년 6월 브리크컴퍼니를 창업했다. 온오프라인으로 발행하는 <브리크brique>는 도시와 공간, 사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축은 기술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 삶 그 자체임을 깨달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