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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5

초현실주의로의 즐거운 여행, <인사이드 마그리트>전



지난 4월 29일부터 9월 13일까지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열리는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인사이드 마그리트>는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전시다(물론 아이가 함께 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20세기 문화·예술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초현실주의의 대가는 언제라도 우리를 상상 속으로 데려간다.




전시 포스터.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르네 마그리트(1898-1967)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중절모 신사, 녹색 사과, 담배 파이프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라는 말처럼 그의 회화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상식 혹은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의 사물과 풍경, 인물을 낯설게 결합하고 배치해 사고의 일탈을 유도하는 것이다.



전시장 입구. 르네 마그리트의 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중절모가 설치물로 놓여 있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증강현실, 실감형 영상 기반 체험물, 각종 교육 체험물 등으로 재미를 더했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전시는 총 8개 키워드로 구성되어 있다. 고향을 떠나 브뤼셀 예술 아카데미에 진학하던 시기의 ‘입체미래주의’부터 시작된 동행은 인상파를 연상시키는 강한 스타일과 밝은 색감의 ‘햇빛 아래 초현실주의’를 거친 뒤, 돌고 돌아 자신의 스타일로 회귀한 다음 미술계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마그리트의 헌신’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일생과 작품의 변화를 시대별로 나눈 덕분에 관람객은 한 편의 위인전을 쉬이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그리트의 일대기를 둘러볼 수 있는 공간.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작을 조망한 ‘입체미래주의’와 ‘초기 현실주의’를 비롯해 '암흑기’, '파리 에서’, '친화력’,  '햇빛 아래 초현실주의’, ‘바슈시대’, ‘마그리트의 헌신’ 등 8개 키워드로 나눠 구성되어 있다.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햇빛 아래 초현실주의’ 전경.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예술 학교에서 드로잉과 회화를 배우며 아카데믹한 미술을 처음 접한 그는 초창기 미래주의 입체주의풍 작품에 몰두했지만,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rico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등 당대의 초현실주의작가들을 만나며 차츰 이 사조에 흥미를 느낀다. 일상 속 소품이나 주변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 그는 체스판의 말을 과장된 사이즈로 배치해 숲처럼 표현하고 그 안에 작은 사이즈로 기수를 그린 ‘길 잃은 기수’(1926) 등을 발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연인>, 1928 얼굴에 흰 천을 두른 채 입을 맞추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그로데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20 C.Herscovici / 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연인’(1928)에는 사실 비극적인 개인사가 숨겨져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어머니는 사실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다 그가 14살이 되던 1912년 집 근처 강에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이런 슬픔과 아픔 때문이었을까? ‘연인’, ‘해변의 남자’(1927) 등 1920년대 후반 작품에서는 어머니의 죽음에 영향을 받은 듯 검은색, 갈색, 파란색, 어두운 초록색 등이 주로 쓰였다.



<이미지의 배반>, 1929 ©2020 C.Herscovici / 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마그리트 개인의 아픔을 투영한 이때*가 작가로서 가장 폭발적인 창작력을 보여준 시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그리트는 당시 그의 작품 가운데 약 1/4에 달하는 유화를 남겼다.


*전시 기획자도 이 시기를 ‘암흑기’로 분류해 구성했다



그중 하나가 널리 알려진 파이프 그림 ‘이미지의 배반’(1929)이다. 파이프 그림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마그리트는 “이 작품은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지 아무도 이것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하며 현실과 묘사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했다. 이미지는 현실이 아닌 환상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의 이 말은 변기를 뒤집어 놓고 ‘샘’이라 이름 붙인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식 위트나 반짝이는 벌룬 독 앞에서 “미술은 대단하거나 위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제프 쿤스Jeff Koons식 역설과 맞닿아 있다.



<이미지의 배반>을 구현한 대형 설치물.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이번 전시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작품은 ‘골콩드’(1953)다. 중절모를 쓴 여러 신사들이 하늘 위에 수없이 복제된 이 작품은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낙비를 연상시킨다. 일상과 현실의 상황을 뒤엎고 고정관념을 깨는 방법을 연구하던 르네 마그리트는 이처럼 일상 사물이 비현실적으로 크거나 작아지고, 중력과 반대로 하늘을 떠도는 방식을 사용해 작가의 의도를 전달했다.



<골콩드>, 1953 ©2020 C.Herscovici / 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



마지막으로 르네 마그리트가 예술가임과 동시에 철학가임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작품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1964년 완성한 ‘사람의 아들’이 그것이다. 마그리트는 남자의 얼굴에 사과를 병치한 이 그림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보는 대상은 늘 어떠한 것의 뒤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사람의 아들>, 1964 ©2020 C.Herscovici / Artist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우리가 볼 수 없다고 해도 사과 뒤에 남자의 얼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뒤에 가려져 있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만 감추어진 것, 확연히 보이는 것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던 르네 마그리트의 철학적 고민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의 이러한 정신은 높이 평가받았고, 1965년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는 마그리트에게 헌정하는 회고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회는 다른 3개 미국 도시를 순회하기도 했다.


'빛의 제국’ 전경.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마그리트의 어록이 새겨진 전시장 벽.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제공



이번 인사동에서 열린 특별전 전시장은 초현실주의 거장이 남긴 어록과 영상들로 가득하다. 그는 55년 전 열린 모마에서도, 2020년 여름 서울의 전시장에서도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의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 작품 이미지 제공 지엔씨미디어

김이신 <아트 나우>편집장

<아트 나우>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쳐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8-2019 아티커버리 전문가 패널, 2018-2019 몽블랑 후원자상 노미네이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