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문의031-645-9191

에덴 미디어

컬처
2023-11-30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읽기 #14

대중문화 속 스토리텔링 #14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100마일이 넘는 거친 바다를 종단하는 것. 자신의 평생의 꿈을 위한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다섯 번의 도전을 그린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살펴본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넷플릭스를 통해 독점 공개된 실존 인물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스포츠 전기 영화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공식 포스터   출처 : Daum영화


실존 인물인 다이애나는 수영 전문가로 젊은 시절 뉴욕 맨해튼 섬 둘레 45km를 8시간 만에 완주할 정도로 유능한 장거리 수영 선수였다. 그녀는 1978년, 29세의 나이에 쿠바 하바나에서 플로리다 해변까지 수영으로 횡단하기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무려 30년이 흐른 후 다이애나는 다시 60이 넘은 나이에 도전한다. 그러나, 2011년 8월, 9월(62세), 2012년 8월의 도전은 실패로 끝난다.


결국 64세였던 2013년 8월 31일, 쿠바 하바나에서 출발하여 9월 2일 오후 2시 미국 플로리다 키웨스트 해안에 도착했다. 최초로 하바나 ~ 마이애미 간 180KM를 53시간 동안 헤엄쳐 종주한 것이다. 다이애나는 무려 이틀하고도 다섯 시간을 홀로 바닷물 속에서 분투했다. 다섯 번의 도전 끝에 거둔 성공, 제목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이 도전의 횟수에 방점을 둔 작명이다.



1978년부터 나이애드가 도전한 수영 루트   출처 : Wikipedia


위의 요약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스토리의 바탕이 되는 실화 자체가 워낙 흥미진진하다.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며, 죽을 고생을 다하고 결국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바다 종단 수영은 매우 위험하고, 성공하더라도 청각 장애, 신체 손상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히말라야 등반이나 절벽 맨손 등반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과 인간의 노력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며 억지로 만들어 낸 허구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60이 넘은 여성의 도전이라니. 그녀가 아무리 왕년에 빼어난 수영선수였다 한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스틸컷   출처 : Netflix


영화는 다이애나의 60세 생일 파티를 묘사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절친 ‘보니’ 덕분에 근사한 서프라이즈 파티를 보낸 다이애나는 우연히 어머니의 유품 중에서 메리 올리버의 시집을 발견한다.


“말해 보아라, 격정적이고 귀중하며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쓸 생각인가?”

(Tell me, what is it you plan to do with your one wild and precious life?)


어머니가 표시한 페이지에서 발견한 이 시구가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다이애나의 모험심을 끌어올린다. 사실 다이애나는 선수에서 은퇴 후,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다. 늘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온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인데,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건가?” 다이애나는 평생의 친구 보니를 코치로 임명하고, 29살에 멈췄던 도전을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도입부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스틸컷 출처 : Netflix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필자가 이후의 스토리를 요약하여 소개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아래의 간단한 원칙에 따라 마치 이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된 것처럼 스토리를 상상해 본 후 영화를 감상하면 어떨까?


1. 주인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통과해야 할 장애물을 난이도 순(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으로 적절히 배치할 것.

2. 주제를 전달한 장애물은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주인공이 가장 힘든 순간에 배치할 것.


그리고 여기 스토리를 엮어가기 위한 풍성한 재료들이 있다. 다이애나의 횡단 수영 도전 실화에 따르면, 그녀가 마주했던 장애물들은 다음과 같다.(난이도와 관계없는 무작위 순이다.)


1. 독성 해파리떼

2. 젊은 라이벌 도전자들의 등장

3.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4. 장시간 수영 시 나타나는 환각 증상

5. 기상 악화

6. 60대의 단련되지 않은 몸

7. 호흡이 맞는 최상의 스태프 꾸리기

8. 적절한 조류 타이밍 (썰물과 밀물의 도움을 받기 위해)

9. 수영하면서 음식 먹기

10. 일체의 도움 금지 (배에 손이 닿아서도 안되고, 도움을 받으며 수영을 해서도 안됨)

11.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자신의 성격

12. 상어떼의 공격


위의 예시들 중 어떤 것들은 도전 과정에서 마주친 물리적인 장애물이고, 또 다른 것들은 그녀를 오랫동안 괴롭힌 내면의 문제들이다. 30년의 기간, 다섯 차례의 도전 동안 늘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도 있고, 일회성으로 끝난 것도 있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방대한 현실을 짧은 시간 동안 극적으로 엮어내는데 그 묘미가 있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스틸컷 출처 : Netflix


영화의 각본을 쓴 작가들은 여러 장애물들을 2시간 동안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게끔 적절한 위치에 배치했다. 동시에, 나이애드라는 한 인간의 도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그려냈다. 나이애드는 완벽한 인간도, 선수도 아니었다. 결점도 많고 자만심도 있었지만, 그녀의 미덕은 스스로 동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몸은 늙었지만 정신은 아주 멀쩡해. 젊어서는 그게 없었지만 지금은 있어...” 멀리 가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팀이어야만 한다는 교훈도 함께...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스틸컷 출처 : Netflix


한때, 빛나는 외모로 추앙받던 여배우 아네트 베닝(58년생)과 조디 포스터(62년생)가 자신들의 늙음을 가리지 않고, 1년간의 수영 훈련과 강도 높은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몸으로 보여주는 혼신의 연기가 감동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다이애나가 평소 강조했다는 말로 글을 마친다.


“꿈을 좇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삶은 한 번뿐이기에 귀중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인간도 불멸을 맛볼 수 있다. 나처럼.”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예고편 보기




김경모 작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하였다. 목원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의했다.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미스테리야’의 스토리를 집필했으며, 현재 제주에 머물며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