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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6

에덴낙원, 헨델의 ‘기뻐하라’가 들려오는 곳




‘완고한 자가 깨어지면 더 견고한 자가 된다.’ 권영걸 이사장이 창조주를 만난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는 세상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유교 문화 속에 자라서도 크리스천으로 차원 이동을 경험한 그는 미리 정해둔 안식처 앞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학, 정부, 산업계에서 두루 활동하셨습니다. 새로운 일에 어떤 마음으로 임하시는지요.

대학에서 35년, 서울시에서 3년간 도시∙지방행정을 경험했고, 기업에서 3년간 디자인 경영을 했습니다. 오랜 교수 생활을 통해서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와 시대정신을,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관료로서는 조직을 유기적 전체로 보는 통합성을, 기업경영을 통해서는 시장과 고객을 읽는 눈과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익혔지요. 이처럼 차선 변경이 많은 삶이었는데, 그 중 어느 곳도 먼저 가겠다고 목표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뜻밖의 이동이었기에 저를 그곳에 보내시는 분의 뜻을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봄이 시작될 무렵의 에덴낙원에서 권영걸 이사장을 만났다. 사진 김정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이사장님의 디자인 개념을 대표하는 슬로건입니다. 디자인 공개념을 비롯해 공공 디자인 확산을 주도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전국적인 공공 디자인 열풍을 일으키기 전까지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오직 상업디자인에 국한되어 있었어요. 사실 디자인은 오랫동안 세분화된 표적 시장의 필요와 취향에만 맞춰져 있었고,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만 존재했지요. 개인의 사적 공간은 사치했지만, 도시와 같은 공적 공간은 누추했어요. 공공 디자인을 주창하게 된 배경입니다.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사회 공공재이고, 국가경쟁력의 핵심 수단이며,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원천 수단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의 공(公)개념을 제창하고 윤리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디자이너들의 시선을 ‘5%를 위한 디자인’에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으로 돌리게 했지요. 이러한 흐름은 시대정신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4차 산업혁명시대 디자인 방향으로 ‘작은 디자인’을 강조하셨습니다.

점차 모든 기관과 조직은 필요와 한계의 규모로 수축되겠지요. 국가도 정부도 작은 정부로, 도시도 소도시와 작은 마을로, 작은 학교, 작은 교회, 작은 자동차로 갈 겁니다. 장묘 공간 역시 에덴낙원같이 개별 공간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무화(無化)해야지요. 요즘 사람들이 난세, 말세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인지가 갈수록 발달하고 있고, 문명적인 일대 각성도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욕망을 절제하고 소유를 줄이는 ‘근본주의 디자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청정에너지를 위한 디자인, 동력을 얻는 방식에 관한 디자인,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디자인, 에너지 최소화와 탄소배출 극소화를 위한 디자인 연구, 그리고 폐기를 컨트롤하는 디자인에 집중해야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어요.



그에게 에덴낙원은 헨델의 오라토리오가 울려퍼지는 듯한 공간이다. 사진 김정한


디자인 전문가로서 바라본 에덴낙원은 어떠셨습니까?

디자이너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찾아내는 데는 귀신이지요.에덴낙원을 총괄한 최시영 건축가와는 오랫동안 교유해온 사이이고 공간 조형에 관한 철학도 공유하는 터라 그런지, 별반 시비 걸 데가 없네요(웃음). 전체적인 단지 플래닝에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멋지게 오케스트레이션 했습니다.

에덴낙원은 죽은 자를 찾아가는 음울한 공간이 아니라, 가족과 고인이 함께 대화하는 밝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실내로 유입되는 경쾌한 빛, 적절히 열리고 닫힌 공간, 외부와 내부 공간이 상호 침투하고 관류(貫流)하는 부활교회 등 묵상과 소통, 위로와 치유가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장묘문화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대개 비즈니스로만 접근한 공간 이어서, 공간에 거룩함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평가는 참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무덤에는 가지 않으면서, 왜 에덴낙원에는 자꾸 가게 됩니까? 삶과 죽음, 산자와 고인, 그 경계의 소거랄까 ‘충만한 하나 됨’이 에덴낙원 설계의 성공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지난 해, 에덴낙원에 미리 안식처를 준비하셨지요.

미리 준비한 계기도 물으셨는데, 사후 준비에 적정한 시간이 따로 있겠습니까? 지난해 추석 무렵에 여러 공원묘지와 봉안당을 돌아봤어요. 일종의 납골당 헌팅에 나선 것이지요(웃음). 그 과정에서 심히 어지러운 우리나라 장묘문화의 현장을 마주했고, 죽음 앞에서까지 허세를 부리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에덴낙원은 달랐습니다. 장송곡이나 진혼곡이 들려올 것 같은 곳이 아니라,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기뻐하라(Rejoice greatly)’가 울려 퍼지는 듯한 곳이었지요.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는 것을 아는 분들이 함께하는 맑고 밝은 처소입니다. 제게는 나이 서른 살밖에 안 된 늦둥이 아들이 있는데, 제 안식처 옆 칸에 있겠다고 합니다. 그에게도 에덴낙원은 머물고 싶은 곳인가 봅니다.


안동의 뿌리 깊은 유교 환경에서 자라,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기독교를 받아들이셨습니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맨 멍에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연중 온갖 관혼상제를 감당하시는 모습을 보며 그러한 예제(禮制)에 깊은 반감이 있었는데, 후일 결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장로 권사이신 장인 장모님께서 소원하시니, 믿음 없이 그저 효도하느라 교회에 나가다가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조목조목 따져가며 성서를 읽었지만, 미처 열려 있지 않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던 니고데모와 같았습니다. 그래도 알고 싶은 욕망은 커서, 혼자 바이블 해설서를 뒤적거리곤 했습니다. 이 역시도 한밤 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가던 니고데모와 닮은꼴이었지요.

그러다 유학 시절 교회에 다니면서 곧바로 교리 공부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평소 버릇처럼 명명백백 따져보고 믿는 ‘명시적 신앙(explicit faith)’으로 일관했으니, 하나님이 그리 기뻐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나 완고한 자가 깨어지면 더 견고한 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안동의 시골 청년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차원 이동이 일어난 겁니다.



미리 준비한 안식처에 대해 말하는 권 이사장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다. 좋은 곳으로 옮겨 가는데 기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냐며. 사진 김정한


그동안 많은 일을 감당하시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담배는 평생 안 했고, 술도 거의 안 합니다. 특별한 건강관리법은 없고, 늘 맑은 공기와 물, 정(淨)한 음식, 가벼운 움직임, 좋은 인간관계, 태평한 마음, 행복한 상상을 하며 삽니다. 평생 보고 듣고 생각하는 방향과 초점이 나를 지으신 분의 지으신 목적에 맞추어져 있다면 일생이 건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행복한 상상’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 제자들의 변화와 성장을 바라볼 때 가장 즐겁습니다. 제 자식은 저의 생물학적 유전자를, 제자들은 저의 이념적 유전자를 받은 자들이지요. 그들이 잘 뻗어 나가는 모습과 놀라운 성취를 지켜볼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들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니까요. 행복도 습관 같아요. 행복한 상상을 하면 할수록 행복감(euphoria)의 승수 효과가 일어납니다. 늘 더 좋은 내일이 기다려져요.


평생 동안 해오신 많은 일들을 뒤돌아 보면 후회되는 바는 없으신지요?

없습니다. 지나온 일에 대해 성찰은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원래 기질적으로 낙천주의이고, 또 예수님께서 짐을 내려놓으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후에는 그날 그날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더 질적으로 승화된 낙천주의자가 된 거예요.




권 영 걸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안동 출생.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환경조경학과에서 수학 후, 미국 UCLA 건축디자인대학원을 나왔다. 이후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및 미술대학 학장, 서울대 미술관 관장, 서울시 부시장, (주)한샘 사장, 계원예술대학 총장을 지냈다. 창조경영대상 수상 및 황조근정훈장을 수훈했으며, 현재는 서울예고 교장, 동서대학교 석좌교수 그리고, 서울디자인재단과 (사)문화창조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황은비 에덴미디어 편집장

에디터, 기자, 에세이스트. 언론을 전공하고 매거진, 일간지 등 매체에서 일했다. 현재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오가며 기억될 콘텐츠를 고민하고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