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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미디어

피플
2020-05-26

사색, 위로, 추억, 묵상의 공간을 디자인하다, 건축가 최시영



“좋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정직한 직인인 동시에 독실한 크리스찬이 되어야 한다.” 영국을 상징하는 건축물 빅벤Big Ben을 설계한 아우구스투스 웰비 노스모아 퓨진Augustus Welby Northmore Pugin은 이런 말을 남겼다. 건축가에게 탁월한 기술과 남 다른 신념이 모두 필요하다는 의미다. 에덴낙원을 디자인한 최시영(리빙엑시스 대표)이야말로 이 말에 가장 부합하는 건축가가 아닐까 싶다. 타워팰리스, 쉐르빌, 미켈란 등을 설계하며 주상복합공간의 전성기를 열었던 그는 건축과 실내, 조경을 아우르는 랜드스케이프를 하나로 표현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에덴낙원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를 아우르고 싶었다는 그를 성북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photo by 김정한



‘농사 짓는 건축가’로 알려지기 전 대표님은 이미 국내 최고의 공간 디자이너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원래부터 공간 디자이너를 꿈꾸셨나요?

사실 어릴 적 꿈은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아닌 화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화가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직업이란 인식이 강했죠. 집안의 반대가 심해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건축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와보니 제가 상상한 모습과 너무 다른 거예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미술이든, 디자인이든, 건축이든 다 하나로 통한다고 하지만, 혈기 왕성한 대학생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죠. 대학 시절 내내 방황을 했습니다. 공간 디자인에 입문하게 된 것은 다소 우연이었어요. 건설사에 근무하던 친구와 아르바이트로 개인 주택 공간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당시 클라이언트들은 주로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는데 생각할 게 많고 복잡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생활 공간만큼은 최대한 미니멀하길 바랐습니다. 제 디자인은 그런 니즈에 딱 맞아 떨어졌고요.


정말 의외군요. 대표님은 주상복합시대의 개국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죠.

1988년이 분수령이 되었던 것 같아요. 당시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민소득 1만불 시대가 도래했거든요.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국민소득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평균 소득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과 소비가치 등이 달라지거든요. 이때 마침 분양가 자율화가 이뤄지면서 건설사들은 공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제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죠.







최시영 대표가 설계한 류미재 갤러리하우스. 2011 iF 디자인 어워드, 아시아태평양 공간 디자인 협회상, 2011년 골든스케일상, 명가명인상 등을 수상했다.



가든은 대표님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심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워낙 숨 가쁘게 생활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갔어요. 자연스럽게 마음에 위로를 주는 자연을 찾게 되더군요. <행복이 가득한 집><디자인> 등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로부터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를 소개받은 게 그 즈음이었어요. 당시 그녀는 영국에서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더군요.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오경아 씨도 바쁜 일상 속에 스스로 소진되는 일이 많았고, 우연히 접한 가든을 통해 마음에 회복을 얻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영국의 가든 문화를 접하게 됐고 제 작업에도 가든을 넣기 시작했죠.


가든이 어떻게 마음을 위로해주었나요?

글쎄요. 가든에는 제 일의 속성과 반대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요소가 오히려 위로가 되더군요. 디자인이라는 것이 그래요. 몇 날 며칠을 질질 끌다가 어느 날 아침 퍼뜩 영감이 떠오르면 이전에 진행사항을 단박에 백지로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자연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거든요.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그 이후로는 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빠르게 판단하고 신속히 결정하는 제 업의 특징과 퍽 상반되죠. 그런 느림이 저에게 힐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생명의 가든에서 photo by 김일다



가든에 대한 대표님만의 철학도 있을 듯합니다.

가든은 사색과 위로가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에덴낙원의 가든을 설계할 때는 여기에 추억과 묵상이라는 키워드를 더했죠. 묵상은 에덴낙원의 곽요셉 이사장님이 강조한 주제였어요.


자연스럽게 에덴낙원 이야기로 넘어온 것 같네요. 어떻게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되셨나요?

사실 에덴낙원 부지에는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근에 갑자기 모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이 들어설 것이라는 계획이 들려오면서 난관에 부딪혔죠. 당시 호텔을 지으려던 건물주를 만나 이런 저런 의견을 냈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마침 곽요셉 이사장님으로부터 납골당 부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프로젝트가 새로운 답을 찾은 것이죠. ‘그동안 내가 디자이너로 살아온 게 혹시 이 프로젝트를 맡기 위한 인도하심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웃음).





에덴낙원 전경 photo by 김일다



에덴파라다이스호텔에서 내려다 본 가든 전경 photo by 김일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신 납골당을 찾을 때면 늘 그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분명 시설도 좋고 분위기도 엄중한데 이상하게 방문할 때마다 죄인이 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에덴낙원은 고인을 모시는 곳이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콘서트가 열리고, 결혼식이 열리고, 각종 파티가 열리죠.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몰라요. 어떻게 고인을 모신 곳에서 그런 이벤트를 열 수 있냐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한 안식을 얻은 곳인데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문제가 될까요? 오히려 자신의 흔적 가까이에 자주 찾아와 기억해주면 고인도 기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photo by 김정한



죽음에 대한 해석과 정의도 남 달랐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글쎄요. 저는 예전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았어요. 그저 담담히 인생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죠. 남겨질 자녀에 대한 걱정은 있지만 말이죠. 그 근간에는 죽음이 안식이 될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란 막중한 책임감을 떠안는 사람이예요. 저처럼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는 사람은 압박감이 더욱 심하죠. 창작의 고통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다 보니 마지막 순간도 기쁘게 받아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62개 홀로 이뤄진 봉안당 ‘부활소망안식처’에서는 다른 납골당에서 느끼기 어려운 온기가 느껴집니다.

제가 주상복합공간 전문가로 알려져 있잖아요? 주상복합공간의 꽃은 분양이랍니다(웃음). 만약 특정공간만 분양이 잘되고 그렇지 않은 존이 발생한다면, 그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것은 봉안당을 설계할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어딘가 소외된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봉안당은 지하에 위치해 있지만, 전혀 어둡지 않아요. 중간중간 선큰sunken 가든을 둬 자연채광을 들인 결과입니다. 봉안단 쪽에는 회랑을 둬 고인의 가족들이 묵상을 할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사장님의 결단력이 크게 작용했어요. 사실 수익만 따지면, 이처럼 비워 두는 공간은 나올 수가 없죠. 봉안단 한 칸이라도 더 넣었으면 더 큰 수익을 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희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고인의 삶을 기리고 묵상하는 시간을 선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이죠.





봉안당 전경


분골함을 넣는 봉안단에는 고인이 평소 즐겨 읽던 성경 구절을 새길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곽요셉 이사장님과 노희영 대표, 제가 함께 한 미팅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일반적인 납골당과 달리 에덴낙원의 봉안단은 유리가 아닌, 대리석 및 브라스 소재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고인이 생전 즐겨 읽거나 그 삶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성경 구절을 새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그 말씀들이 모여 하나의 성경책이 완성되는 것이죠.


대표님도 생각해둔 성경 구절이 있나요?

사실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간결하고 멋진 말씀으로 선택하고 싶은데(웃음). 그런데 제 삶을 응축한 성경 구절보다는 제 자녀,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을 선택하게 될 것 같아요.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기존 지형을 활용해 디자인한 것도 에덴낙원의 특징이다 photo by 김일다



마지막으로 에덴낙원이 어떤 공간으로 각인되길 바라시나요?

에덴낙원이 한국의 장례문화가 바꾸는, 일종의 분기점이 되었으면 해요. 사실 에덴낙원을 구상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어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공간이다 보니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없었죠. 아마 저희 뒤로 등장할 납골당들은 조금 더 수월한 길을 걸을 거예요. 에덴낙원이 앞서 증명을 해냈으니까요. 그렇게 하나둘 새로운 형태의 납골당이 나오고 장례문화가 변화되면 더 없이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photo by 김정한


<삶과 죽음의 공존이 반영된 에덴낙원의 봉안당 바로가기>


<가족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가는 생명의 가든 바로가기>




최명환 <에덴 미디어> 편집장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미학을 공부했다. 다년간 디자인 전문지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칼럼니스트, 브랜드 기획자 등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 <에덴 미디어>의 초대 편집장을 맡았다.